사람들은 ‘대전형무소’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62년의 무심한 세월은 흘렀다. 이제 이곳이 ‘대전형무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형무소의 자리는 아파트와 높다란 건물들이 차지했다. 예전에 이곳이 형무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속살을 드러낸 채 버티고 있는 콘트리트 망루와 접근을 가로막은 철망 속 우물, 그리고 생명체로선 유일하게 살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오래된 버드나무 한그루뿐이다.
중촌동에 대전형무소가 만들어진 것은 1919년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에 의해 부족해진 수감시설을 확충하기 위해서 였다.
일제강점기 안창호, 여운형, 김창숙 같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고 6.25전쟁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에는 이곳 대전형무소 재소자중 정치범들이 산내로 끌러가 학살당하는 단초를 만든 곳이다.
같은 해 9월은 연합군에 쫓기던 인민군에 의해 양민과 우익인사들이 집단학살당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62년전 대전형무소라는 공간은 전쟁을 빌미로 이념의 인적청산을 한 살육의 소각장 이였던 것이다.
형무소라는 명칭은 1961년 교도소로 개칭되면서 1984년 유성으로 이전되었고 2001년 ‘구 대전형무소 망루’가 대전시문화재자료47호로 지정되어 역사의 현장으로서만 그 흔적을 남겨놓았다.
이곳은 더 이상 일제가 만들어 독립투사들을 억압했던 형무소도, 전쟁이라는 구실 속에 이념의 잣대로 서로를 죽여야 했던 살육장이 아닌, 우리가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는 민족화해와 통일의 소망이 담긴 평화공원일 뿐이다.
6월 중촌동에 가면 슬픔을 평화로 치유하는 평화공원이 있다.
/박종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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