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란 상대의 요구에 꽂히는 미사일 같은 것.” 아부의 고수는 아부를 이렇게 정리한다. 영업에 성공하려면 상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아부는 필수 덕목. '아부의 왕'은 직장생활을 무대로 한 무협지다. 순수남은 '무공'을 쌓기 위해 '고수'를 찾아가고, 기본에서 필살기까지 전수받고 익히며, '청출어람', 스승을 넘어서 보험왕에 오르는 과정은 딱 무협지다.
눈치도 융통성도, 약에 쓸래도 없는 '고지식' 동식(송새벽). 만년 교감 아버지를 교장으로 승진시키기 위해 뇌물을 뿌린 어머니 때문에 사채 빚을 떠안게 되고, 빚을 갚으려면 단기간에 보험왕이 돼야 한다. 하지만 융통성 제로인 그가 영업이 될 리 만무. 우연히 접한 '감성 영업의 법칙'이라는 비법책을 보고는 '혀의 고수'(성동일)를 찾아 아부의 기술을 전수 받게 된다. 성동일의 애드리브와 송새벽 특유의 어눌한 연기는 찰떡궁합이다.
혀고수의 지도 아래 동식이 아부의 재미를 알아가며 '아부의 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찰진 대사와 절묘한 호흡으로 객석을 “빵” 터뜨려 놓는다.
“자존심이란 놈은 출근 전 냉장고에 잠시 보관해 놓는 것”이라는 직장생활의 지혜, '침묵'을 기본으로 “눈을 3초간 맞춘 뒤 4초간 미소를 보낸다. 그러나 5초 이상이면 위험하다”는 '3, 4, 5의 법칙', “암요, 그럼요, 별말씀을”을 콤보로 풀어내는 '맞장구의 법칙', '반가사유상의 그윽한 미소' 등 아부 아니 '감성 영업'의 비법은 극 중 동식뿐 아니라 관객들도 새겨둘 만하다. 폭소급이지만 직장인들의 삶, 서민들의 애환을 적절히 녹여낸 웃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혀고수의 가르침에 활짝 피어난 웃음은 동식이 고속성장하고 난 후 갑자기 시들해진다. 뜬금없이 첫사랑과의 로맨스가 끼어들면서 영화는 점점 아부란 소재에서 멀어지더니 급기야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린다.
“진정한 아부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거지만 순정만큼은 버릴 수 없다”는 동식의 대사엔 진정성과 순수함은 있지만 웃음기는 없다. 아부계의 또 다른 고수인 예지(김성령)가 우아한 매력에 '확 깨는' 행동으로 웃음을 살리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순 없지만 한국 코미디 장르는 코미디에 로맨스, 감동을 모두 집어넣으려는 억지를 부린다. '댄싱퀸'처럼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가 실패. '과속스캔들'처럼 코미디면 코미디답게 웃음 하나로 끝까지 밀고 가는 뚝심이 오히려 먹힌다. 성동일-송새벽 같은 재주꾼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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