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리어ㆍ고물상ㆍ건설업까지… 빈손으로 시작, 산전수전 겪은 오뚝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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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리어ㆍ고물상ㆍ건설업까지… 빈손으로 시작, 산전수전 겪은 오뚝이 인생

“IMF때 100억원 보증 덫… 주변 회유에도 불구 부도 안 내 15년간 빚 갚고 사업도 잘됐으니 복을 받았나 봅니다”

  • 승인 2012-06-19 14:16
  • 신문게재 2012-06-20 11면
  • 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이경태 기자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이경태 기자
[중도초대석]박해상 건설협회 충남도회장(우석건설 대표)

▲ 김상구 기자
▲ 김상구 기자
“맨주먹에 단벌신사로 시작한 사업가이지만 뚝심과 신뢰를 우선으로 오뚝이처럼 일어났습니다.” 올해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장에 추대된 박해상(63ㆍ우석건설 대표) 회장이 밝힌 인생역정에 대한 소회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진 것은 없었지만 성실과 최선이 재산이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포기'라는 말보다는 '극복'이라는 말을 선택해왔다. 나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주의가 아닌, 모두 함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공생주의가 박 회장이 살아온 길과 어울린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그도 그럴 것이 버섯재배를 하던 농사일에서 시작해 부동산중개업, 호텔리어, 고물상, 건설업에 이르기까지 거치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다. 판잣집에 가까운 허름한 창고에서 살림을 꾸리며 화전민들과 이웃이 돼 생활하는 등 그의 인생은 겉보기와 달리, 순탄치 않았다. 그런 그가 이젠 우석건설의 대표이사이자 충남지역 건설사들의 수장이 됐다. 오는 26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박해상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장을 만나 인생역정을 들어보았다.

- 어릴 적 가정생활은 어떠셨나요.

“충남 계룡시 경천리에서 태어나서 경천초와 경천중학교를 나왔어요. 옛날에는 허가가 나지 않은 고등국민학교에 다녔었는데 이후 공주 영명고에서 학업를 이어나갔지요. 어릴 적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는데 논은 3~4마지기(2000~2600㎡가량) 정도에 지나지 않아 가계에 큰 도움은 안됐던 것으로 기억이 돼요. 당시에 무척 가난했죠. 밭이 조금 있긴 했지만 밭 경작만으로 끼니를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에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지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그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교육비와 생활비로 지원해줬기 때문이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 2명과 인근 저수지 공사현장 소장 및 감독관 등 4명이 하숙했던 것으로 기억이 돼요.”

하지만, 이것만으론 박 회장의 학비를 조달하는데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이부동복(異父同服) 형님인 황명진(전 대전시의원)씨가 사업을 하면서 도움을 줬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박 회장은 “형님의 도움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겁니다. 형님과 형수님이 있었기에 오늘날 제가 우뚝설 수 있었습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도 박 회장은 유독 운동을 좋아했다. 중학교 3년 동안에는 태권도를,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태권도와 유도를 했다. 이 같은 운동이 박 회장을 뚝심과 강인한 청년으로 만들었다.

-살아오면서 직종을 많이 바꾼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얘기가 궁금합니다.

“1967년에 영명고를 졸업한 뒤 서울에 있는 YMCA 호텔학교에 들어가게 됐죠. 그곳에서 1년 동안 생활을 했었는데 영어를 비롯해 일어, 서비스업 등을 배웠지요. 이후 세종호텔에 입사해 2년 정도 근무하다 27살 때까지 여러 호텔에서 호텔리어의 생활을 했죠.”

호텔리어의 생활을 정리한 박 회장은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이 부동산중개업을 하지 않아 20대에 중개업자가 된 박 회장은 졸지에 '전국 최연소 공인중개사'가 됐다. 대전 동구 용전동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열었다. 일명 '복덕방'이다.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세종시가 들어서는 장기 인근에 수도를 천도하겠다는 얘기를 했던 때여서 충청권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렸던 시기였다. 이후 부동산중개업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본 박 회장은 부동산중개업에서 손을 떼고 공병 사업에 뛰어들었다. 쉽게 말하면 고물상이다.

당시 공병 파동이 있었는데 그와 같은 시기를 적절히 활용했다. 박 회장은 높은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고물상을 시작한 것이다.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은 덕(?)에 일부 사업자금을 쥘 수 있었다. 그는 '버섯재배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혹해 경기도 양수리에서 표고버섯 재배사업을 시작했다. 버섯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팔거나 시장에 공급하기도 했다.

“큰 아이를 막 낳고서 시작했죠. 헝겊 기저귀로 어린애 허리를 묶어 나무에 매달에 놓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참 고생을 많이 했죠.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라며 박해상 회장은 밝게 웃었다.

-건설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부동산중개사업과 공병사업을 마무리 짓고, 소규모로 주택건설업을 하고 있던 형과 주택사업을 시작했지요. 집장사라고 할까요. 대전 동구 삼성동에서 시작했는데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어 팔면 집장사고, 토지소유주로부터 의뢰받아 집을 지으면 청부업이라고도 했어요. 집장사를 시작한 것이죠. 토지 1필지를 사서 집을 지어 팔아보기도 하고, 땅을 빌려 집을 지은 뒤 팔면서 건설 경험을 쌓기 시작했죠.”

박해상 회장이 주택건설업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 중반. 그는 반도건설이라는 주택건설업체를 설립해 주택사업을 시작했다. 반도건설을 통해 서구 괴정동을 비롯해 중구 중촌동, 동구 삼성동 등지에서 20~30세대 규모의 빌라와 연립주택을 지으며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던 중 1993년 종합건설업 면허를 내 사업영역을 키웠다. 때문에 그를 아는 지인들은 박 회장의 인생을 '오뚝이 인생'이라 비유한다.

▲ 박해상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장은 결혼 초기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가족과의 추억을 만들며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 박해상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장은 결혼 초기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가족과의 추억을 만들며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웠던 때도 있었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인생의 재미도 느꼈지만, 시련도 많았죠. 그 때만하더라도 주택건설사업은 연대보증 없이는 추진하기가 어려웠답니다. 다른 업체의 사업에 대해서도 연대보증을 해줬는데, 당시 대한주택협회 대전충남도회 총무를 맡고 있다보니, 회원사들에 대한 연대보증을 서줄 수 밖에 없는 처지였어요.”

시련의 시작은 1997년 IMF 사태가 터지면서부터였다. 연대보증을 서줬던 업체들이 금융부채를 해결하지 못하자 결국 연대보증을 섰던 박 회장에게 부채 부담이 고스란히 전가됐다.

“당시 갚아야 할 부채 규모는 100억원이나 됐죠. 앞이 깜깜하더라고요.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막막했고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 회장의 주변사람들은 그에게 “부도를 내라, 그 돈을 어떻게 갚을 것이냐, 한 푼이라도 챙기고 부도처리를 내는 게 낫겠다”며 회유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자신마저 부도를 내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것이란 생각에 벌어서 갚기로 결심했다.

“혈액형이 A형이라서 소심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마음 속에서부터 저도 모르게 누구의 돈을 떼어먹을 수는 없다는 말이 줄곧 나왔어요. 그동안 서로 믿고 일해왔던 협력업체, 친구, 직원들을 못살게 만들어놓고 혼자서 빠져나온다는 게 저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죠.”

그는 “모두를 힘들게 하고 나만 어떻게 다리를 펴고 살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고 말했다. “신용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신용을 잃지말자는 게 제 신조인데 그럴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15년 동안 차근히 1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모두 갚았습니다. 차분하게 앞만 바라보며 길을 걸어왔지요. 일반인들에게는 바보처럼 보였겠지만, 그런 제 태도 때문인지 이후부터는 사업하기도 수월해졌지요. 아무래도 복을 받았나 봅니다.”

-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장으로서 건설시장의 변화에 대해 강조해 온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건설시장이 변화해야 하는 것 맞아요. 지금 상황으로서는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정부가 계속 복지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건설업이 위축되면 건설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돼 이것 또한 복지를 소홀히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박 회장은 건설시장이 예전의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서는 SOC(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경기 부양을 위해 건설사업을 우선적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또 세종시 개발 호재가 지역업체들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도 개탄했다. 혁신도시 건설의 경우 지역업체 참여비율이 30%인데 반해 세종시 건설과 관련 지역업체 참여비율은 이를 훨씬 밑돌아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건설사업에 지역업체가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지역업체로서는 세종시가 '그림의 떡'일 수 없어 박 회장으로선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박 회장은 “송기섭 행정도시건설청장이 지역업체 참여 확대를 위해 대기업에 협조를 당부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는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살면서 부인의 내조가 힘이 되었을 것이라 보는데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데는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공주지역에서 정미소와 운수업을 하는 방앗간집 셋째딸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죠. 처가에서는 제가 가난한 집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난해서 못살겠다는 푸념이나 불평불만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죠.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박해상 회장은 그러면서 “가난했지만 자신을 믿고 따라주며 인생의 반려자로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에게 항상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과 부인 오영애씨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해상 회장과 전 태안군수를 지낸 김세호씨와는 가까운 사이다. 그런 김 군수가 오영애씨의 집에서 전세를 살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김 전 군수의 소개로 5살 연하인 오씨를 만나게 된다.

당시, 맨손에 단벌신사였지만 믿고 따라와 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에 박 회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주택사업을 소규모로 시작할 당시 흔히 말하던 '야방간'에서 생활을 했다. 야방간이라는 것은 밤중에 자재가 도난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보초를 서는 곳으로 보초를 서는 사람에게 돈 주는 것이 아까워 직접 야방간에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때였다.

“하루는 장모님이 찾아오셨죠. 장모님께서 딸이 야방간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 방에 들어서지도 않고 그냥 처가로 돌아가셨죠. 그 때 장모님께서 딸이 생활하는 것을 보고 많이 우셨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몹시 아팠어요. 표고버섯 재배사업을 하면서도 화전민과 함께 살았을 때도 아내는 고생을 엄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행복한 마음으로 이해해 준 아내가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남 만큼 먹는다”고 답한 박해상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장. 박 회장의 골프실력은 보기플레이 할 정도다.

그는 '행복연구소장'으로 근무하는 아내와 함께 사회복지사업을 해 보는 게 꿈이라며 “항상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여생을 아내와 함께 할 생각”이라며 끝을 맺었다.

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이경태 기자


●박해상 회장은 누구?
▲1949년 충남 계룡시 경천리 출생.
▲공주 영명고 졸업, 충남대 경영대학원 수료, 원광대 최고경영자 정책과정 수료, 한남대 범죄예방 전문화 교육과정 수료, 한양대 공과대학원 유비쿼터스녹색성장 최고과정 수료, 대전검찰청 범죄예방운영위원 대전지역협의회 수석부회장, 충남경찰청 경찰발전위원회 부위원장, 대한주택건설협회 대전ㆍ충남도회장, 우석건설 대표.
▲대전시 건축상 동상, 공주세무서장 표창, 법무부장관 표창, 충남 건축상 수상, 대전국세청장 표창, 국토해양부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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