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 팬이라면 1982년은 기억할 만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판타지 'E.T'가 선보였고 리들리 스콧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가 극장에 걸렸다. 디즈니의 야심작 '트론', 존 카펜터의 '괴물'이 이 해에 나왔다. 'E.T'의 거센 흥행돌풍에 나머지 영화들은 줄줄이 쓴맛을 보고 말았지만 '블레이드 러너'가 그러했듯 '괴물'도 결코 만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남극의 설원을 달리는 개를 헬리콥터가 쫓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괴물'은 공포를 조종하는 기교면에서 알프레드 히치콕과 견줄 만한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 존 카펜터의 연출, 롭 보틴('토탈리콜'), 스탠 윈스턴('에이리언' '쥬라기 공원' '터미네이터2')이 디자인한 괴물과 특수효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어우러져 훗날 SF 공포영화의 걸작 반열에 오른다.
총을 들고 개를 쫓던 사내는 미국 남극기지 대원들에게 사살되고, 사내가 노르웨이인임을 알아본 대원들은 노르웨이 기지에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다.
참혹하게 변한 노르웨이 기지에서 부서진 외계우주선을 발견하면서 대원들은 끔찍한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무엇'인가가 있다. 그 '무엇'은 생물체를 공격한 뒤 생물체의 DNA를 취해 그 생물체의 모습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진 외계생물체. 진품과 복제품을 구분할 수 없게 되면서 대원들은 점점 동료들조차 믿을 수 없게 된다.
마치 상상력을 거침없이 풀어놓는 듯한 기괴한 괴물의 비주얼은 충격적이고, 남극기지라는 폐쇄된 공간과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단적인 불신은 등골 서늘한 공포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으로 몰고 간다. 이 끔찍한 '불신 지옥'은 개개인의 삶을 중시하면서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통렬한 경고이기도 했다.
어제 개봉한 매티스 반 헤이닝겐 주니어 감독의 '더 씽'은 '괴물'의 앞선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이다. 그러니까 노르웨이 기지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그린다.
노르웨이 대원들은 빙하시대 이전의 것으로 짐작되는 구조물과 얼음에 갇힌 외계생명체를 발견하고 연구를 시작한다. 조직 샘플에서 외계생명체가 눈을 뜨고 기지는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다. 주인공이 여자로 바뀌었을 뿐 이후부터는 '괴물'과 거의 판박이다.
'괴물'을 아직 보지 못한 관객들에겐 CG범벅 괴물이 공포감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높아진 관객들의 눈을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괴물'을 이미 본 이들에겐 그저 헛헛할 뿐이다. 30년 전 걸작을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야심이야 나무랄데 없지만, 그러려면 뭔가 신선한 것을 준비했어야 했다. 쇄신의 묘를 보여주지 못한 '더 씽'은 그저 그런 아류작에 머문다. '괴물'을 따라가기엔 한참 멀었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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