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7회 현충일을 맞은 6일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헌화ㆍ분향을 위해 찾은 참배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손인중 기자 dlswnd98@ |
6일 제57회 현충일을 맞은 국립대전현충원은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남편의 묘소를 찾은 30대 여성과 먼저 간 아들 묘비 앞에 선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참배객들로 붐볐다.
묘비 앞에는 한송이 국화 꽃과 함께 한잔의 술이 놓였고, 그리움에 사무친 유족들의 눈물 방울이 맺혔다.
이른 아침 현충원 내 사병묘역, 허장옥 하사의 묘 앞에서는 10여 명의 유가족이 함께 절을 올리고 있었다. 고 허장옥 하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총탄을 맞은 뒤 평생 그 총탄을 몸 속에 놔둔채 살다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묘역을 참배한 아들 허진(50ㆍ대전)씨는 “아버지는 자랑스런 군인이셨다”며 “살아생전 좀 더 잘 모셨어야했는데, 언제나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인근 묘역에서도 곳곳에서 차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한 유족들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고 강부희 준위의 묘비 앞에 두 손녀의 손을 잡고 선 강원식(82)씨는 현충일이되면 어김없이 손녀들을 데리고 아들의 묘소를 찾는다. 먼저 간 아들에게 두 딸이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강씨는 아들의 묘비를 쓰다듬으며 “부희야, 딸들 잘 크고 있다. 네가 먼저 간지 어느새 몇년인지도 잘 기억이 안나는구나. 잘 있지”라고 인사를 전한 뒤 고개 숙여 울먹였다. 한참이 지났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은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의 크기로 강씨를 짓눌렀다. 시간이 갈수록 묘역을 찾은 참배객들은 늘어만 갔다.
한 묘비 앞에는 흰 저고리를 입은 노파가 쓸쓸히 서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숨진 고 김하섭 상병의 부인 임언전(82)씨다. 꽃 다운 나이에 혼자간 된 임씨는 60년 전 사별한 남편을 아직도 가슴에 묻고 산다.
임씨는 “하도 오래전 남편과 헤어져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내가 죽어 남편과 만났을 때 젊었을 적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남편이 나를 기억해줄지가 걱정이다”고 애절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안함 용사 묘역에도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 박보람 중사의 묘 앞에서는 한 가족이 참배를 하고 있었다. 박 중사의 사촌형인 이재희(45)씨 가족이었다. 이씨는 “보람이는 정말 착한 동생이었는데, 그런 동생이 먼저간 사실이 안타깝다”며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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