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대전가정법원을 찾은 30대 중반의 부부. 이들은 결혼한 지 1년 반만에 파경을 맞았다. 성격 차이가 원인이었다. 이혼 문제가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부인은 남편에게 혼수비용 반환을, 남성은 정신적 위자료를 청구하며 소송에 이르게 됐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것은 감정 뿐인 상황이 됐다.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다. '검은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겠다'던 약속을 뒤로 하고 이혼 법정에 서는 부부들의 사연도 가지가지다.
대전가정법원 제305호 법정에서는 이날도 20여 건의 이혼 소송이 진행됐다.
갓난 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에서부터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부부에 이르기까지, 결혼 생활이 파경으로 치달은데는 누군가의 잘못이 있겠지만 이들 소송의 대부분 쟁점은 위자료와 재산분할 문제다.
가정법원에 접수된 이혼 소송 중에는 상당수가 조정을 통해 합의에 이르기도 하지만, 조정 과정에서 원활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법정에 서서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혼소송의 경우 형사재판과 달리 '무 자르 듯' 법리적으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재판부 역시 당사자들의 조정과 합의를 유도하는데 우선을 둔다.
이날 재판대에 오른 첫 번째 사건은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성이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남성이 그 동안 준 돈을 돌려 달라며 제기한 소송이다.
재판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재판부는 사실혼 관계 파기에 따른 손해비용이나 정신적 위자료가 아닌 금전거래의 내용은 민사소송에 해당한다며 원고인 남성에게 청구 원인을 정리해 민사로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뒤 이어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재판대에 섰다. 이들은 재판에 앞서 위자료와 친권 및 양육권 지정에 합의, 재판을 단 몇 분만에 마무리 한 채 남남이 됐다.
40대로 보이는 중년의 부부, 남편의 부정행위가 이혼 사유였다. 이들은 재산 분할 문제를 놓고 소송에 들어갔다. 여성은 재산 형성 과정에 공동 기여분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했지만, 남성은 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법정에서까지 고성이 오갈 정도로 이미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었다.
60대로 보이는 노년의 여성도 있었다. 전 남편과 헤어진 후 한 남성을 만나 10년 넘게 함께 생활해 왔지만, 자식들 눈치를 보느라 혼인신고를 해 주지 않자 사실혼 파기와 함께 위자료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이 노년의 여성이 사실혼 파기 보다는 재산상의 노후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어서 조정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다시 조정위원회에 회부토록 했다.
대전가정법원 나상훈 공보판사는 “일반 민사나 형사 사건과 달리 이혼 소송은 당사자인 두 사람간에 발생한 일들이라 증거 입증이 힘들고 법적으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조정에 응하지 않고 재판까지 오는 경우 감정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자녀 문제 등을 생각해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도록 조정과 합의를 권고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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