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이 법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와 교육감의 임무, 학교장의 의무까지 22개 조항에 걸쳐 빼곡하게 규정하고 있다. 전문상담교사 배치 및 전담기구 구성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국가수준에서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해서 수많은 장관과 경찰청장 등이 당연직 위원이 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있고, 시ㆍ도에는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를 두어 각 자치단체장이 교육감과 협의하며, 단위학교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두도록 하였다. 수많은 책무와 규정, 각종 위원회까지 열거되어 있어서 읽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현란할 정도다.
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교육계가 그 동안 소를 키우기는 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교육이 제대로 되어왔다면 이처럼 험악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또 번잡한 대책으로 부산을 떨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키우는 소도 없이 외양간만 번지르르하게 해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인데, 여전히 그 근원부터 다스릴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폭력이라고는 하지만, 학교현장에서 일어난 일인만큼 교육적인 진단과 처방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에서 경찰청장에 이르기까지 학교 바깥에서 해법을 구하려고 하니 낚싯대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는 꼴이다.
교육은 '인간의 의식과 행동의 성장과 변화를 통한 사회화 과정'이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식과 인성이 통합된 인간을 배출해야 한다.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인격의 함양을 돌아보아야 하고, 인격을 함양하면서 지적인 성취와 교양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과정은 그것이 학문을 중시하든 생활을 중시하든 교과의 형태로 구성된 것을 만나게 된다. 교과의 지식이나 기술을 공부하는 과정은 자해(字解)에서부터 시작하여 문해(文解), 의해(意解), 이해(理解)를 거쳐 신해(身解)의 단계에 이르게 되어야 교육의 목표가 달성된 것이며, 그렇게 해서 일련의 교육의 과정이 끝나게 된다. 글자를 알게 된 뒤에는 문장을 알게 되고, 문장을 알게 된 뒤에는 그 문장이 담고 있는 뜻을 알게 된다. 그러나 문장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삼라만상 즉, 사물의 세계를 관통하는 이치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치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없다. 모름지기 '몸으로 푸는' 신해(身解)의 경지에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 동안 잡다한 지식의 전달과 수수에 몰입하는 불균형한 교육관이 지배해 왔기 때문에 교수-학습의 과정이 고작 문해(文解)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니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박식하기만 할 뿐, 박식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와 맥락조차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시험에 능한지는 모르나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이 본질을 망각한 채 겉돌고 있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의 폭력은 물론이고 학교 바깥세상에서는 불의와 부정부패가 빈발할 수밖에 없다.
개인은 물론 학교와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지식과 인성이 통합된 공부를 해야 한다. 교육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과정의 내용들이 지식의 수준에 머물러 머리 속에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손발 끝에 구현되어 나타나야 한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지식을 삶 속에 녹여서 학생들에게 구체적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치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람을 몸소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몸으로 푸는 교육' 즉, 신해(身解) 교육이며, 이러한 교육이라야 건강한 학교와 사회를 약속해 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