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너의 예쁜 조카와 함께 네가 있는 곳에 다녀왔다. 5월 26일은 네가 우리 집의 새 식구로 태어난 날이다. 엄마는 밤새 생일 음식을 마련했고, 아빠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새로산 경차를 타고 와, 미역국과 반찬을 차려놓으니 조카 다혜가 '외삼촌 맛있게 드세요' 하더구나. 엄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어느덧 네가 우리와 산 날과 떠나간 시간이 비슷해졌구나. 군에 입대할때까지 너에게 자유를 주지 못한 것이 항상 미안하다.”
▲ 지난 1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개최된 '하늘나라 대형우체통' 설치행사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전태웅씨. |
1991년 6월 군에 입대해 '맹호부대(수도기계화사단)'에서 복무하던 그의 아들, 고(故) 전세한 이병은 같은 해 12월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둔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혔다.
스물 하나, 꽃 다운 나이에 군에 입대한 아들이 6개월 만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것.
벌써 20년 째, 경북 경산에 사는 전씨는 가슴에 묻은 아들을 찾아 매달 한번 꼴로 아내와 함께 대전현충원을 다녀간다. 그리고 전씨는 그리움이 사무칠때 마다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써내려 갔다. 꼬박 20년, 전씨가 대전현충원에 보낸 '수취인불명'의 편지 700여 통이 아들의 묘비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하지만 하늘로 가지 못한 편지는 그렇게 아들의 묘비 앞에서 쏟아지는 빗물에 씻겨 내려가곤 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국립대전현충원과 충청지방우정청은 전씨 처럼 아들과 형제를 가슴에 묻은 유족들을 위해 지난 1일 현충원 민원실 앞에 높이 5m의 대형 우체통을 설치했다. 이름은 '하늘나라 대형우체통'으로 붙여졌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의미를 더한 행사였다. 이제 현충원으로 배달되는 유족들의 편지는 이 우체통을 통해 저 하늘 위 호국영령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전씨도 이날 행사에 참가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고이 접어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었다. 전씨가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현충원 민원실 앞마당은 순식간에 눈물 바다가 됐다. 그리고 전씨는 이날 그 자리에서 한 통의 편지를 더 써내려갔다.
“싱그러운 6월 첫날,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네가 이곳에 누워 있는지 벌써 20여년이 되었다. 네가 가족을 떠난날부터 아빠 엄마는 어느 하루 너를 멀리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고 산다. 이승에서 처럼 고통스럽게 살지 말고 저 하늘 나라에서는 부디 평화롭게 지내라. 훗날 아빠와 같이 하늘나라에서 다정하게 살자. 6월 1일 아빠가.”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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