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순 목원대 교직과 교수 |
“두루미야, 와줘서 고마워 어서 먹자.” 여우가 혓바닥으로 그릇에 담긴 국을 먹는 동안 두루미는 부리를 콕콕 찍기만 하고 먹을 수가 없었다. “왜 못 먹니? 배가 안 고프면 내가 먹을까?” 여우가 두루미의 콩국까지 모두 먹어 버리자 두루미는 삐쳐서 팽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벼르고 있던 두루미는 며칠 후 여우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어서 와, 너를 위해 맛있는 생선국을 준비했어” 식탁에는 생선국이 들어 있는 기다란 병이 놓여 있었다. “어서 먹자. 여우야” 두루미는 긴 부리를 병 속에 넣고 맛있게 생선국을 먹었다. 배가 고팠던 여우는 자신의 뭉툭한 주둥이를 아무리 노력해도 병 속에 넣을 수가 없었다. 여우는 심하게 화가 났다.
“너는 내 주둥이가 짧은 걸 알면서 왜 목이 긴 병에 국을 담아 놓았니?” “그럼, 여우 너는 내 부리가 길다는 것을 알면서 왜 납작한 그릇에 콩국을 담았는데, 그날 내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알아?”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쉼 없이 누군가를 사랑한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며, 부모와 형제를, 친구를, 동료를 그리고 이웃을 사랑한다. 그런데 나의 사랑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아주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래서 당신에게 무엇 때문에 화가 살짝 났는지. 그리고 그 결과, 당신에 대한 나의 감정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려 하니 지금 이 기회에 잡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당신에게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르고, 결국 우리 사이의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럼 왜 여기 까기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설명은 거두절미하고 사랑의 본마음이 싸움으로 뒤집히는 것일까.
동물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차이 나는 한 가지가 바로 설명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한다. 설명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단다. 인간이 교육을 통해 오랫동안 배워야 하는 것도 바로 이 설명하는 능력이다.
사랑도 설명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목사이면서 부부와 가족의 사랑에 대한 세계적인 강연자로 유명한 게리 체프만(Gary Chapman)박사는 사랑과 감사를 전달하는 5가지 표현을 강조한다.
첫째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무엇이 좋았는지 왜 사랑하는지 말로 자세히 표현해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한다. 둘째, 밀도 높은 시간 함께하기다. 여행을 같이 가든 토론을 하든 서로 시간을 충분히 공유하는 것이다.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달콤하고 유익한 대화는 필수적이다. 셋째, 선물 전달하기다. 사소한 기념일을 챙기면서 간단한 물건을 교환하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서로 상호작용한다. 물건은 곧 마음이 되는 것이다. 넷째, 봉사하는 행동이다. 상대방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자. 커피를 만든다든지 좋은 정보를 준비한다든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행동을 하면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스킨십이다. 상대를 손잡아주고, 안아 줄 때 사랑의 마음이 전해진다. 스킨십은 우리에게 가장 서툰 사랑의 표현방법이기도 하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잘 안아주면서도 아이가 커지면 서로 경계한다. 우리는 관습상 상대방을 보고 눈웃음만 쳐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외롭고 슬프고 일상이 힘들 때 누군가에게 위로의 포옹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잘 알 것이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낄 때 세상은 살만하지 않을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