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피자집 아저씨와 의원 재량사업비

  • 오피니언
  • 데스크시각

[최충식]피자집 아저씨와 의원 재량사업비

[중도시평]최충식 논설실장

  • 승인 2012-05-29 14:20
  • 신문게재 2012-05-30 20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학교 앞에 소문난 피자집이 있었다. 주인은 꼬마 손님들에게 문제를 내서 맞히면 피자 한 판을 공짜로 더 주고 못 맞히면 돈을 더 받는다. 스핑크스 별명을 가진 그 아저씨가 낸 오늘의 문제는 '피자를 6명이 공평히 나눠먹는 방법은?'이다. '자르는 사람이 가장 나중 선택한다'가 답. 자기 몫인 마지막 한 조각을 다른 다섯 조각과 크기를 근접시키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엄청나게 문제가 된 소규모 숙원사업비(의원 재량사업비)는 피자 조각 나누듯 나눠도 왜 공평해 보이지 않는 걸까? '공평할 것'은 물론, '다수가 납득', '서로에게 이익'과 같은 스핑크스 조건에서 벗어나서일까? “사업비를 편성하지 않은 집행부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가한 충남도의회의 예산안 칼질은 공수(攻守)의 선을 넘어 복수혈전처럼 격했다. 3029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에서 800억여원을 도려낸 과감함은 중앙정부나 다른 지방정부 기록을 뒤져봐도 전무후무한 수준이다.

액수뿐 아니라 내용도 몽니 사납다. 보복은 내포신도시 진입도로 사업비와 같은 필수 사업비, 장애인 생활시설 운영비, 노인복지관 개보수비와 같은 사회적 약자 예산, 벼 대체작물 재배농가 지원비 등에도 뻗쳤다. 침대보다 키가 크면 자르는(작으면 늘리는), 그래서 죽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시킨다. 책임 있는 도정 카운터파트 간 대응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맞삭'(서로 친구 삭제) 형태로 마구 달려 보기에도 참 민망했다.

극단과 극한을 달리는 길목에서 권희태 충남도 정무부지사는 기자 앞에서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까지 읊으며 몽니에 맞선 약간의 엄살을 섞었다. 의원들로서는 사업비 존속 여부와 별개로 “주민이 뽑은 의원을 감히!” 하며 사태를 악화시킨 처사는 사실 도민에게 용서 구해야 할 불찰이다.

진정성과 관계없더라도, 소규모 숙원사업비나 풀(pool) 사업비로 불리는 관행 예산으로 주민 민원을 챙길 부분이 있다거나, 사업비가 지방자치법과 지방재정법 정신에 맞다거나, 시청률과 드라마 작가 관계처럼 표 앞의 의원도 나약한 존재임을 이실직고했으면 혹시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 지역구 주민에게 의원 효능감을 환기하는 성격에도 불구, 배수로 정비나 농로 포장 등 생활민원 해결에 나름대로 요긴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보완하고 투명화했으면 호떡집에 불난 양 시끄러울 이유가 없다.

'재량사업비 있기? 없기?' 놀이가 펼쳐지는 충남의 이웃 대전은 사업비가 없고 충북은 있다. 충북은 내년부터 신청을 받아 선별 지원한다고 했다. 수도권(서울ㆍ인천ㆍ경기), 동남권(부산ㆍ울산ㆍ경남), 대구, 광주, 제주도 폐지했거나 없다. 부산은 애초 없었다. 경북, 전남, 강원은 있다. 전북은 폐지한다면서 다른 재원으로 할당하려다 땅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분명히 할 것이 있는데, 재정 지원 페널티를 내세운 정부지만 사업비 편성 자체를 금기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스핑크스 아저씨조차 '의원 1인당 2억원씩 45명분 모두 90억원' 셈법을 공평하다고는 안 한다. 감사원 관계자도 중도일보 기자에게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쓸지 특정하는 절차성을 강조했다. 명료한 사용처, 사용기준과 공공성을 갖추라는 얘기다. 지역구 체면치레용 쌈짓돈 성격의 태생적 한계로는 폐기보다 도리어 어려울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카드가 제시되든 행정안전부 지침, 감사원 경고를 회피하는 수동성보다 다양한 사회적 실천 속에서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 정책을 샤워꼭지에 비유하면 뜨겁거나 차다고 냉ㆍ온수 양쪽으로 성급히 틀어대지 말고 알맞은 온도의 시차 쯤은 예측해야 한다. 일부 의원들은 사업비 일괄 편성을 요구한다는데, 눈앞에 전개된 꼭 같은 사안을 놓고 살인 용의자, 목격자, 사무라이 아내, 사무라이 혼백의 진술이 각각인 '라쇼몽 효과'가 느껴진다 할까?

불환과이환불균(患寡而患均), 부족함을 걱정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공자 어록이다. 이 말이 부담스러우면 배우 앤젤리나 졸리의 배꼽 아래 '나를 성장시킨 것은 동시에 나를 파괴한다' 문신이라도 상상하길, 그도 마뜩찮으면 피자집 아저씨의 지혜라도 얻길 권한다. 지금은 “맛 좀 봐라”며 잘라낸 추경예산안을 재심의해 살릴 건 살리는 일이 우선 급하다. 그리고 재량사업비 해법은 '재량사업비' 용어 안 쓰기부터가 출발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