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사내커플의 문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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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사내커플의 문화학

  • 승인 2012-05-27 12:36
  • 신문게재 2012-05-28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대체방 : 같은 (행내) 직원끼리 결혼
교환방 : 다른 은행 직원과 결혼
출납방 : 거래 고객하고 결혼

대체방, 교환방, 출납방은 은행권의 업무 용어는 아니고 업무 용어에서 파생된 용어다. 어떤 계정의 금액을 다른 계정으로 옮겨 적는, 즉 통장으로만 돈이 오가는 '대체(對替)'에서 '대체방'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숨기려는 의도가 아니니 은어(隱語)라 할 건 없는 은행스러운 용어다.

은행식으로 '대체'를 찍은 커플이 나란히 들어와 통합 청첩장<사진>을 건넨다. 회사 내 교제를 청첩장 돌릴 때(36.9%) 아는 사람도 많다는데, 실은 사내연애를 많이 들킬 때인 연애 중후반기(48.2%)에 알고서 짐짓 입을 봉했더랬다. 반가움에 느낌표 2개(!!)가 머리에 쳐진다. 청첩장 절약도 사내커플의 장점이었다. 언제든 보고 싶으면 본다는 것, 관심사의 공유, 회사 반경 100m만 넘으면 손잡고 퇴근이 가능하다는 것….

장점을 뒤집으면 그 역(逆)이 된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사내결혼은 자연스러운 만남이다. 가까이 있다는 '근접성'은 사랑의 씨앗 아닌가. 국경을 넘는 사랑도 그렇게 시작한다. 비슷한 태도와 끌림으로 '유사성-매력 가설'이라는 울타리를 타려면 우선 파트너의 시야에 들어가고 볼 일이다. 눈도장 찍을 기회가 잦으면 입술도장 찍을 확률도 올라간다.

이러한 '단순노출효과'의 승자가 사내커플이다. 잘 아는 것에 호감을 갖는 숙지성의 원칙에다 근접성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최(最)근접한 것뿐이다. 원거리 커플의 혼인율은 생각같이 높지 않다. 공간적, 심리적, 실리적 거리가 가해지면 '고무신 거꾸로 신는' 배신이 그럭저럭 해명되는 이유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사랑의 변질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한때 뜨거웠으나 남의 둥지에 놀러간 새처럼 심드렁한 부부가 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에는 피셔의 정욕(lust), 애정(attraction), 애착(att-

achment)의 3요소가 있다. 한국식 '정(情)'도 애착의 계보인데, 그래서 '미운 정' 때문에도 산다. 애정, 아니 애증의 시간은 점점 흐르는 속도도 다르다.

그리하여 죽도록 달뜨게 하고 미치게 하던 사랑이 변하고, 뇌 속 사랑의 화학물질까지 시간을 두고 달라진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은주(이영애 분)에게 묻는 상우(유지태 분)의 멍청한 대사가 명대사인 것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이 변한다는 뜻. 그냥 짝짓기와 짝짓기를 성문화(成文化)한 결혼에서의 시효는 또 다르다.

요즘 '짝'이란 TV 프로그램을 가끔 보고 있다. '남자 몇 호, 여자 몇 호'로 불리던 출연자 중 결혼한 커플은 주어진 공간(애정촌)에서는 거들떠도 안 본 남남이었다. 남에게 비친 모습에 집착 말아야 행복함을 그들은 혼전에 미리 알았다. 아무래도 노출 빈도가 높은 사내커플이 특히 그걸 일찍 알면 결혼생활이 더 행복해질 것 같다.

행복한 '대체방' 커플이 조만간 또 탄생한다. 내리 몇 년째 몇 쌍인데 은행 용어인가. 처음 하는 생각인데, 필자 커플도 '출납방' 성격이 좀 있다. 대체방, 교환방, 출납방을 대신할 언론 용어를 찾으려니 나와바리(출입처), 모찌(기삿거리), 도꾸나니(특종), 야마(핵심)… 되바라진 일본말이 가로막는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거참.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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