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주영 문화부장 |
서울 종로 2가와 5가, 청계천, 서울역 일원은 최루탄 가스가 끊이질 않았다.
'민족해방(NL, National Liberation)'과 '민족민주(ND, National Democracy)', '제헌의회(Congress Assembly)'계열로 대표되는 운동권 문화가 대자보와 함께 캠퍼스 곳곳에 짙게 배어있었다.
'꽃병(화염병)과 전조(전투조), 가드(경호대원), KIS(김일성), NK(북한), SK(남한), SM(Student Movement)' 등 무수한 약어들이 활개를 쳤다. 당시 군부정권의 탄압을 피하려던 학생 운동권들의 생존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또 다른 기억은 '의식화'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역사란 무엇인가』, 『자본론』 등은 대학가의 필독서였다. 이를 토대로 대학생들은 군 입대 이전까지(보통 2학년) '열심히' 반독재 투쟁 전선에서 '청춘'을 바쳤다. 이들을 386세대, 지금은 486세대라 부르고 있다.
대학 입학의 시작이 최루탄과 전투경찰, 닭장차(전경버스)와 함께 하다 보니 학생들은 적잖은 고민을 했다.
당시 학생들은 지금처럼 취업 걱정을 크게 하지 않다 보니 인문학, 그 가운데 사회과학 서적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다.
일부 학생들은 동아리(당시는 서클이라는 표현을 썼다)를 만들었다. 사상연구회, 민족문화연구회 등의 진보적 동아리를 통해 80년대 시대 상황을 학문적으로 인식하려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문적 접근이라기 보다는 재야적 시각을 사회과학 서적을 통해 습득하려했다. 이들은 인문학의 기초인 고전을 읽지는 않았지만, 독재사회 저항의 '사상적 무기'를 제공해줬던 사회과학 서적을 고전처럼 읽으며 새로운 세계관에 눈을 떴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요즘 대학가는 사뭇 다르다. 대학 축제가 한창인데 축제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취업 때문이다. 특히 지방대학의 고민은 크다. 교육과학부가 각 대학의 취업률을 대학 평가 지표로 삼다 보니 각 대학은 졸업생들의 취업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취업률이 상대적을 낮은 인문학 계열 등은 통폐합 대상이 되곤 한다. 대학 총장들과 교수들은 각 기업체를 뛰어다니며 취업 알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학생들은 영어책을 들고 도서관에서 씨름 중이다. 공무원 시험에 대학 4년과 졸업후 2~3년을 바치다 보니 자연스레 대학에서 해야 할 '진짜 공부'는 실종 상태다.
대학이 취업 사관학교로 전락했다는 지적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던 중 반가운 움직임이 들려와 다행이다. 대학생이 아닌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문학으로 귀환'열기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가 인문고전 읽기 운동에 나섰다는 것도 공직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직원들이 한달에 1권씩 고전을 읽은 뒤 해당사이트에 독후감을 올리면 지도위원(멘토)의 지도와 함께 독후감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서점가에 가봐도 꽤 많은 인문학 서적이 눈을 집중시키고 있다.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을 중심으로 공자, 맹자를 읽고 있다는 뉴스도 전해지고 있다. 당시에는 '보수반동'이라고 여겼으나 이를 새롭게 해석해 우리 사회에 적용시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옛 '운동권 투사'들은 왜 고전을 손에 들었을까. 필자는 최근 우연히 손에 든 『논어』 첫 구절에 '필이 꽂혔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子曰 人知而 이면 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탓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할지니(子曰 患人之己知, 患知人也).” “남이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참으로 알려질 수 있기를 구하라(子曰 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최근에 만난 한 인사는 “지역에서 똑똑하다는 분들을 대부분 만났는데 고전을 제대로 읽은 이를 보지 못했다. 건방진 예단일지 모르지만 이 지적 황폐가 지성인들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고전 읽기를 권하는 이유일 것이다.
노인의 몸으로는 수행을 하지 못한다는 원효의 이야기도 문득 떠올랐다.
세월은 물처럼 지나가고 공부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오는데 이루어 놓은 것은 없다고 말한 원효 대사의 말 처럼 젊었을 때 고전을 읽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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