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원 시립한가족노인전문병원장 |
이 분은 정신과로 온 것이 아니고 옆방인 내과로 수면제나 타기위해 잠시 들른 분이었다. 참고로 2주 이상 연속되는 수면장애인 경우 80%이상이 우울증이다. 접수의 도움으로 정신과인 내 방으로 들어온 환자였다. 외손녀를 돌보기 위해 정년퇴임을 한 남편과 대구에서 대전으로 아예 이사 하면서 대구에서 타던 수면제를 처방 받으러 오셨던 것이다. 한데 딸, 남편과 같이 내원을 한 어머니로서 이 K씨와 가족의 분위기가 아주 이상했다. 마치 오랜 기간 고통을 감수해온 지친 얼굴표정, 여기저기 신체적인 불편감을 호소하는데 딸은 걱정의 눈빛보다는 엄마가 “또 저러네!” 라는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단순한 불면증은 아니었다. 검사에 들어갔고 결과는 역시 심각한 우울장애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가족과 환자의 설득부터 들어가야 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본인이 우울증이 아니라고 부정을 하기 때문이다.
일단 환자분을 내보내고 딸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많은 문제가 있었다. 어머니가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남편의 취미인 음악감상 조차 소리가 너무 거슬린다고 싫어한다고 했다. 딸은 어머니가 이런데에 화가 이미 잔뜩 나있었고 불만이 폭발 일보 직전 이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남편과 상담을 했는데 역시 남편도 반은 포기, 절반은 화가 나있는 상황이었다. 못 고친다는것이 중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보호자를 다 같이 불러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제일 중요하다. 어차피 환자는 약을 먹으러 온 거니까 약을 잘 처방하면 좋아질 수 있는데 보호자가 잘못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이번 기회에 깨뜨리지 못하면 영영 기회는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 편견에 대해 설명했다. 첫째가 성격이 나빠서 걸리는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당뇨나 고혈압처럼 내인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약화돼서 생기는 뇌의 감기이고 뇌의 비타민인 항우울제(세로토닌과 같은)를 꾸준히 복용 하면 병은 좋아진다. 셋째로 신체적 불편감과 자율신경계의 역할(왜 우울증에서 통증이나 불편감이 초래되는지의 이유)을 설명했다.
3주가 지났고 약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딸의 행복한 얼굴표정, 남편의 기분좋은 표정, 환자분의 편안한 얼굴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남편은 우울증 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방치했던 것에 대해 우선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 딸 역시 어머니가 십수년 동안 우울하셨기 때문에 성격이 원래 어두운 분으로 알고 있었고 이렇게 명랑한분인줄 몰랐다며 매우 놀라는 한편 즐거워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환자에게 치료적 도움이나 격려를 주는 것이 아니고 비난이나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는 우울증을 우울감과 혼동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을 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이 우울감이다. 결국 당신이 성격이 나쁘다거나 의지가 없다거나 등의 해석을 하게 되고 이는 가족관계를 더 악화시키게 된다. 병중에는 알려야 도움을 받는 병이 있다. 특히 우울증은 많이 알리고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병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병이 우울병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치료를 잘 받았으면 좋겠다. 모든 가족이 함께 행복해지고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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