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성 건양대 군사경찰대학장 |
개항과 함께 밀어닥친 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뭐니뭐니해도 개항기 최대의 수입품은 '옥처럼 깨끗하다' 하여 옥양목(玉洋木)이라 불린 서양목(西洋木)이었다. 우리의 발싸개 버선도 양말(洋襪)로 바뀌기 시작했다. 버선을 뜻하는 말(襪) 앞에다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이란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다. 갖가지 갓과 망건이 중절모로 바뀌었고, 손에는 개화장이라고 불린 지팡이가 들렸으며, 신발은 양화(洋靴)를 신기 시작했다.
양품은 일상의 모습도 바꾸었다. 우리의 물 긷는 질그릇 동이와 비슷해서 붙여진 양동이, 서양 도자기라는 뜻이 모음 역행동화를 일으킨 양재기, 구리ㆍ아연ㆍ니켈의 합금으로 색깔이 은과 비슷한 그릇이란 의미의 양은그릇이 부엌에 등장했다. 우리의 밥상에는 양초(洋醋), 양배추, 양파가 오르고 양순대 즉 소시지도 선을 보였다.
개화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양주(洋酒), 양담배 등의 기호품은 소비 성향을 바꾸었다. 비누, 치약, 칫솔, 혁대, 장갑, 거울, 화장품 등도 개화의 새 풍물지(風物誌)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금줄 손목시계와 회중시계는 처음에는 사치스런 장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공간개념을 파괴한 철도가 눈앞에서 기적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하자 시계는 근대적 시간 개념의 상징으로 일상을 지배했다.
식물성 기름을 때던 등잔은 석유가 수입되자 램프에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스스로 불붙는 물건이란 의미에서 자래화(自來火)라 불렸던 성냥은 전통의 부싯돌을 삼켜 버렸다. 램프와 전구가 밝힌 불빛은 조선 사람들이 현기증 나는 근대 '별천지'를 경험하는 충격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소화기류 및 자양강장제로부터 비뇨기 및 성병약에 이르는 다양한 의약품도 수입되었다. 아날린 계통의 염료인 애련각시와 바늘[洋針]을 비롯해 건축자재인 벽돌, 왜못[洋釘], 시멘트, 철도 설비(plant)도 수입되었다. 근대의 주체로 개항기를 살아간 조선 사람들은 이런 온갖 양품을 통해 일상에서 근대성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이 시기 조선의 수출품은 곡물이나 원자재인 데 비해 수입품은 사치품 일색이라고 꼬집었다. 독립신문도 “조선 사람이 쓰는 옷감의 3분의 2는 외국에서 사서 입고, 켜는 기름도 외국 기름이요, 성냥도 외국성냥이요, 대량으로 쓰이는 종이 역시 수입해다 쓰니 나라에 돈이 남아나겠는가”라고 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정부는 상공업을 진흥시키려는 정책을 펼쳤다. 그럼에도, 양품의 홍수를 막지 못한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조선 사람들은 식민지 백성이라는 기형적 근대화의 터널로 들어가고 만다. 이루지 못한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의 아쉬움은 그래서 더욱 크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한ㆍ중 자유무역협정에 시동이 걸렸다. 원론적이지만, 자유무역협정은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의 수출과 투자가 촉진되는 동시에 무역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반면에 협정대상국보다 경쟁력이 낮은 산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최혜국 대우와 치외법권 인정 등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개항기의 시대적 한계에서 얻는 교훈을 거울삼아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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