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역사 속 개항과 개방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철성]역사 속 개항과 개방

[중도춘추]이철성 건양대 군사경찰대학장

  • 승인 2012-05-17 14:10
  • 신문게재 2012-05-18 20면
  • 이철성 건양대 군사경찰대학장이철성 건양대 군사경찰대학장
▲ 이철성 건양대 군사경찰대학장
▲ 이철성 건양대 군사경찰대학장
1876년 강화도조약이 맺어지자 양품(洋品)이 조선 시장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개항과 함께 근대가 시작된 것이다. 1880년대 문호가 미국ㆍ독일ㆍ영국 등에게도 열리자, 양품 수입 속도는 급물살을 탔고, 물건은 다양해졌다. 양품은 조선의 근대성과 소비문화의 함수관계를 잘 드러낸다. 양품은 소비문화를 개인에서 사회로 확산시키면서 개화와 미개화의 구분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개항과 함께 밀어닥친 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뭐니뭐니해도 개항기 최대의 수입품은 '옥처럼 깨끗하다' 하여 옥양목(玉洋木)이라 불린 서양목(西洋木)이었다. 우리의 발싸개 버선도 양말(洋襪)로 바뀌기 시작했다. 버선을 뜻하는 말(襪) 앞에다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이란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다. 갖가지 갓과 망건이 중절모로 바뀌었고, 손에는 개화장이라고 불린 지팡이가 들렸으며, 신발은 양화(洋靴)를 신기 시작했다.

양품은 일상의 모습도 바꾸었다. 우리의 물 긷는 질그릇 동이와 비슷해서 붙여진 양동이, 서양 도자기라는 뜻이 모음 역행동화를 일으킨 양재기, 구리ㆍ아연ㆍ니켈의 합금으로 색깔이 은과 비슷한 그릇이란 의미의 양은그릇이 부엌에 등장했다. 우리의 밥상에는 양초(洋醋), 양배추, 양파가 오르고 양순대 즉 소시지도 선을 보였다.

개화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양주(洋酒), 양담배 등의 기호품은 소비 성향을 바꾸었다. 비누, 치약, 칫솔, 혁대, 장갑, 거울, 화장품 등도 개화의 새 풍물지(風物誌)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금줄 손목시계와 회중시계는 처음에는 사치스런 장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공간개념을 파괴한 철도가 눈앞에서 기적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하자 시계는 근대적 시간 개념의 상징으로 일상을 지배했다.

식물성 기름을 때던 등잔은 석유가 수입되자 램프에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스스로 불붙는 물건이란 의미에서 자래화(自來火)라 불렸던 성냥은 전통의 부싯돌을 삼켜 버렸다. 램프와 전구가 밝힌 불빛은 조선 사람들이 현기증 나는 근대 '별천지'를 경험하는 충격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소화기류 및 자양강장제로부터 비뇨기 및 성병약에 이르는 다양한 의약품도 수입되었다. 아날린 계통의 염료인 애련각시와 바늘[洋針]을 비롯해 건축자재인 벽돌, 왜못[洋釘], 시멘트, 철도 설비(plant)도 수입되었다. 근대의 주체로 개항기를 살아간 조선 사람들은 이런 온갖 양품을 통해 일상에서 근대성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이 시기 조선의 수출품은 곡물이나 원자재인 데 비해 수입품은 사치품 일색이라고 꼬집었다. 독립신문도 “조선 사람이 쓰는 옷감의 3분의 2는 외국에서 사서 입고, 켜는 기름도 외국 기름이요, 성냥도 외국성냥이요, 대량으로 쓰이는 종이 역시 수입해다 쓰니 나라에 돈이 남아나겠는가”라고 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정부는 상공업을 진흥시키려는 정책을 펼쳤다. 그럼에도, 양품의 홍수를 막지 못한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조선 사람들은 식민지 백성이라는 기형적 근대화의 터널로 들어가고 만다. 이루지 못한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의 아쉬움은 그래서 더욱 크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한ㆍ중 자유무역협정에 시동이 걸렸다. 원론적이지만, 자유무역협정은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의 수출과 투자가 촉진되는 동시에 무역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반면에 협정대상국보다 경쟁력이 낮은 산업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최혜국 대우와 치외법권 인정 등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개항기의 시대적 한계에서 얻는 교훈을 거울삼아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어야 할 때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2. 국립농업박물관, 개관 678일 만에 100만 관람객 돌파
  3. 농림부, 2025년 연구개발 사업 어떤 내용 담겼나
  4. 제27회 농림축산식품 과학기술대상, 10월 28일 열린다
  5. 농촌진흥청, 가을 배추·무 수급 안정화 지원
  1. KT&G 상상마당 제7회 상상 스테이지 챌린지 '설공찬' 최종선정
  2.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3.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4.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5.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