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외모, 완벽한 요리 실력에 때론 섹시하기까지 한 정인(임수정)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한 두현(이선균). 그런데 잘못 봤다. 이 여자, 낙천주의자를 혐오하는 합리주의자에 담배는 아무데서나 벅벅 피워대고, 예의는 지켜도 눈치는 안 보는 독설가다. 돼지가 귀엽게 웃으며 고기를 굽는 삼겹살집 간판 그림까지 한마디 지적하고 반박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니 두현의 회사 부부 동반 모임에서 아랫사람 아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윗분 사모님들의 행태는 난도질 감이다.
반면 이런 정인을 지켜보는 두현의 심장은 콩닥콩닥. 그렇게 7년을 살다보니 노이로제에, 히스테리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아내가 무서워 싫다는 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소심한 두현은 황당한 음모(?)를 꾸미는데, '카사노바'로 유명한 이웃집 남자 성기(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는 것.
황당한 설정이지만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본 감정과 상황을 동원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할 말은 다 하는 정인이나 '지질남' 두현도 다소 과장은 있을지언정 충분히 공감 가는 캐릭터다. 특히 정인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들은 촌철살인감이다. 우리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좀 시끄럽기는 해도 밉지가 않다.
그 덕에 마초 같은 외모에 '단무지나 가지 같은 형광색 음식은 먹지 않는' 초식남, 카사노바 성기의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설득력을 얻는다. 류승룡의 빚어낸 코믹 캐릭터 성기는 단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하다. 남성미에 섬세함을 더한 독보적인 캐릭터, 진지와 코믹을 오가는 능청스러운 연기는 올해의 캐릭터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다소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나리오, 민망할 정도로 관습적인 결말 등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있어야 할 것은 거의 다 있는 꽤 만족스런 영화다. 그렇구나. 대화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구나.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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