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섭 한국무역협회 건설추진단장 |
해양 동물은 푸르스름하고, 사막 동물은 모래와 비슷한 연한 빛이며, 북극의 동물은 하얗고, 식물과 접해 사는 동물은 녹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육지 동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변신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의 체색 변화 속도는 여타의 동물에 비해 두드러지게 빨라 위기 때마다 주위 환경과 비슷한 색깔로 몸을 숨기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카멜레온은 정확히 몇 가지 색깔로 변하는지 모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해양 동물 중에서는 문어가 위장술의 달인, 변신의 귀재로 통한다. 문어는 보호색과 의태를 모두 활용하기 때문에 바다의 카멜레온으로 통한다. 인도네시아 연안에 서식하는 흉내문어는 바다뱀, 넙치, 불가사리 등 무려 40가지의 생물로 변신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은폐의 기술을 군사 분야에서 가장 활용을 잘하고 있다.
이렇듯 은폐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은폐가 적이 아닌 선량한 사람들을 속여 자신의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사회 또한 이를 조장하는 현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은 위장 전입은 기본이고 논문, 학력, 경력 표절 등 각종 은폐에 대해 전혀 도덕적 의식 없이 떳떳하고, 책임 정치를 해야 할 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보듯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당명과 심지어는 로고와 색깔까지 바꾸는 카멜레온 전략으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우리 유권자 역시 웬만한 위장에는 무디어 졌고 심지어는 부추기기도 한다.
학교폭력은 백약이 무효인양 갈수록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폭력학교라는 낙인효과가 두려워 폭력 실태 현황을 축소 은폐하여 발표하려는 경향도 있다. 폭력 발생 건수로 평가하는 탁상공론식의 관료 행정과 한탕주의식 언론이 은폐를 조장하는 가장 큰 주범일 수도 있다.
고리 원전에서 최근 치명적일수도 있었던 정전 사고가 10분 이상 발생했다. 원자력발전소에서의 정전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사고 발생 시에는 현장 책임자의 신속한 대처와 사후 처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던 조직 문화다. 보고 위주의 경직된 상명하복의 비민주적인 조직 문화가 이를 키우고 있었을지 모른다.
건설현장에서 은폐되는 산업재해의 수를 심각한 수준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건설업자는 산업재해 비율이 높으면 불이익을 받게 되고, 이는 공사 수주에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건설업자는 공사수주 평가에 유리하고, 근로자들은 과다보상금을 수령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공상처리를 택한다. 공사업체 선정 시에 적용하는 산업재해의 평가시스템이 이를 조장하고 있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작년 초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모두 20개의 저축은행들이 퇴출당했다. 은행의 신용척도인 BIS비율과 순자산규모 같은 기본 자료가 모두 허위였고 심지어는 가짜 은행 통장까지 등장하였으니 저축은행들의 은폐 기술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더 이상 이를 은행의 CEO, 대주주와 임직원의 도덕성 탓만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이를 감독하고 승인하여 이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금융 당국의 책임이 더 큰 것이 아닐까?
영화 '도가니'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은폐 문화와 이를 조장한 사회 분위기와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은폐를 할 수 없고 더 나아가 은폐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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