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송홧가루를 우리에게 주는 소나무를 괴롭히는 해충이 있었다. 바로 송충이였다. 지금은 방제기술이 뛰어나서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송충이를 잡는 일은 국가적인 사업이었고 연례행사였다. 모든 관공서와 학생들이 총동원되어 송충이잡기에 나섰다. 우리나라 산림의 많은 부분을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송충이방제에 실패하면 산림의 황폐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송충이 피해를 입어 소나무가 말라죽어 송충이 방제에 역점을 두도록 한 기록들이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융릉 주변의 소나무를 갉아먹는 송충이를 입으로 깨물어 죽일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고 그 이후로 사도세자의 융릉 주변에는 송충이가 살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송충이의 먹성이 얼마나 좋았으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는 생활 속의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송충이를 잡을 때 긴 나뭇가지로 젓가락처럼 만들거나 고무줄을 묶어 집게를 만들어서 송충이를 잡기 쉽도록 하고 잡은 송충이는 빈 깡통에 담아 처리하였다. 한 손에는 깡통을, 한손에는 집게를 들고 송충이를 잡으러 동원되는 학생들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송충이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털까지 무성하여 징그럽기가 한이 없었다. 송충이를 잡으면서 친구들끼리 짓궂게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어떤 친구는 송충이를 맨 손으로 잡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송충이 털이 손등이나 몸에 박히면 무척 가렵거나 부풀어 오르기도 하였다.
지금은 송충이가 아닌 재선충에 시달리고 있는 소나무. 우리 겨레의 삶과 함께 해온 나무 중의 나무다. 오늘 하루 쯤 휘날리는 송홧가루와 소나무를 바라보며 송충이를 잡으면서 짓궂은 장난질을 쳤던 추억에 잠겨보자.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