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정신분석학의 뿌리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분석심리학의 거목 칼 구스타프 융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환자로 찾아온 사비나를 사랑하게 된 융과 그런 융에게 집착하는 사비나의 절절한 러브스토리. 뼈대는 멜로드라마지만 그 뒤에 실존했던 프로이트와 융의 이름이 붙는 순간 특별한 이야기로 변모한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비디오드롬'(1983) '플라이'(1986) '네이키드 런치'(1991) '크래쉬'(1996) 등 내재된 폭력성이 폭발하는 끔찍한 세계를 그려왔던 그가 느닷없이 멜로드라마라니.
멜로라고 해도 크로넨버그의 손길이 닿았으니 솜사탕처럼 달콤한 멜로일리 없다. 사비나는 융을 향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융은 그런 사비나를 어찌 해야 할지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심리학을 과학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던 프로이트는 융과 사비나의 관계를 반대한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서 사랑과 위선, 허영, 질투 같은 인간심리의 복잡다단한 면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크로넨버그는 그간 그려낸 '내 몸'조차 지배하지 못하는 주체의 비극을 이번엔 자신의 감정조차 어쩌지 못하는 분석심리학자를 통해 비춰낸다.
유럽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모여 마치 유럽연합(EU)판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영국의 키라 나이틀리, 독일의 섹시가이 마이클 파스빈더, 프랑스의 국민배우 뱅상 카셀,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으로 얼굴을 알린 덴마크계 미국인 비고 모텐슨이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사비나 역 나이틀리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파격적인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
사비나와 융이 서로를 향한 욕망을 분출하고 이성과 본능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장면과 점차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가는 융에게 격노하는 프로이트의 갈등이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긴장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실화라는 핑계로 비켜가기엔 짜임새가 느슨하고, 정신분석학자들의 전기 영화라는 게 학술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일까, 재미도 덜하다. 사족, 사비나 슈필라인은 융에게 치료받는 과정에서 아동정신분석의로 거듭난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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