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 아이들 상처 치유하며 희망도 되찾아가”

“교직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 아이들 상처 치유하며 희망도 되찾아가”

행복과 기쁨 함께 할 수 있는 정신문화 교육통해 완성돼야 '교육 살리기'엔 교총역할도 중요 교사 권익ㆍ교육 발전에 힘모아야

  • 승인 2012-05-08 14:09
  • 신문게재 2012-05-09 11면
  • 대담=오주영 문화부장ㆍ정리=윤희진 기자대담=오주영 문화부장ㆍ정리=윤희진 기자
[중도초대석]자살사건 이후 침묵 깬 오명성 대전 둔산여고 교장

▲ 오명성 교장이 교정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오 교장은 지난 겨울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br />사진=이민희 차장
▲ 오명성 교장이 교정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오 교장은 지난 겨울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민희 차장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연이은 학생 자살사건 이후 처음이다. 사건 직후 빗발쳤던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세간의 따가운 시선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그였다. 이순을 넘겼지만, 세상은 그에게 더한 인내를 요구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자칫 어린 영혼들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 모두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할 수 없었던 그 사람. 오명성(61ㆍ사진) 대전둔산여고 교장이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중도일보와 만났다. 오 교장과의 만남은 지난 3일 대전둔산여고 교정에서 이뤄졌다. 여전히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지난 겨울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았다. 오 교장은 대전교원단체총연합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편집자주>



-오랜만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학생들의 정서를 치유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것 같습니다.”

-교육,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입니다.
“맞습니다. 40년 가까이 교직에 몸담고 있지만, 아직도 정의하기가 어렵네요.”

-선생님께서는 교육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개인이 지닌 잠재적 가능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세상에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지요.”

-교육의 최우선 목표를 어디에 두고 계신지요.
“교육을 통해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과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정신문화가 완성돼야 합니다. 그래서 교육의 최우선 목표는 따뜻한 감성, 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말ㆍ연초부터 힘든 일을 겪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치유된 상태지만, 힘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아마 38년 교직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심정이 어떠셨는지요.
“안타까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일이 일어났을 때, 많은 생각을 하면서 누구도 마녀 사냥식 여론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을 텐데요, 그동안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요.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가장 민감한 시기의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별 상담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며 정서적 안정을 찾게 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심리 검사와 외부 특강, 정서 순화와 생명존중 교육이 내면화되도록 하는데도 노력했죠.”

-학교 분위기도 많이 바뀐 것 같은데요.
“인성과 정서 안정 교육에 노력한 덕분이죠.”
-어떤 교육 프로그램인지요.
“수요일 오후 시간을 모두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으로 편성해 즐겁게 다니는 학교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야간자습도 하지 않죠.

꽃동네 사랑의 봉사활동과 대화 기법에 대한 강의를 3회에 걸쳐 했고, 학년별 또는 학급별로 농촌체험, 병영 체험, 현충원 봉사, 시설 봉사 등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진은 있을 듯합니다.
“학생들이 충격에 견디질 못합니다. 심리적으로 약하죠. 가정교육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자녀와 함께 다양한 체험을 통해 세상을 가르쳐주시길 부모님들께 바랍니다.”

-당시 그 사건에 대해 더 하실 말씀은 없는지요.
“하고픈 말은 많습니다. 하지만, 묻어두는 게 고인들에 대한 예의라고 봅니다. 선생님은 학생에게 교육적 사랑을 가지고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청소년 자살 문제도 심각한데요,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들풀 하나도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봄 산에 피어 있는 꽃들도 제각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이며 전체이고 특별합니다. 죽음은 소중한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입니다. 부모님, 친척, 친구 등 여러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생명은 이유가 있어 소중한 것이 아니고 생명이어서 소중한 것입니다. 순간의 괴로움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기 전 한 번만 주위를 둘러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틀림없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둔산여고가 대전의 대표적인 여고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 평등이 보편적 원리로 자리 잡은 시점에서 여고와 남고를 구별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여고, 그 나름의 위상을 가지고 역할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라는 단어를 붙이면, 그만한 위상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요.
“호모 노마드라 불리는 이 시대는 모든 사람이 정보를 찾아 끊임없이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서의 고향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할 수 있죠.”

-무슨 말씀인지요.
“지금이야말로 모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성은 우리가 언제나 돌아가 안길 수 있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는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여고는 따뜻한 품성으로 세상을 껴안는 모성을 키울 수 있는 장이 돼야 하고, 둔산여고가 그런 문화를 선도해야 할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대전둔산여고, 강점은 무엇인지요.
“전반적으로 보편적인 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게 최대 강점입니다. 긍정적인 가치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점도 있겠지요.
“비전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노력하는 태도가 부족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자란 아이들은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지가 약하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자신감의 결여라 할 수 있지요.”

-장ㆍ단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와 전문성 향상 의지가 높은 교사,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학생 등은 장점입니다. 하지만, 우수한 인적자원에 비해 학교환경은 매우 열약한 편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상업지역과 인접해있고 내적으로는 입학 희망 학생이 많아 학급 증설에 따른 특별실이 많이 부족하죠. 식당이 좁아 점심때도 2부제로 운영하는 등 여러 문제도 있습니다.”

-대전둔산여고 학생들에 대해 자랑 한 번 해주시지요.
“모의고사 영역별로 3등급 이내 학생 분포가 50%를 웃도는 높은 학업성적을 자랑합니다. 기초학력 미달은 거의 없고요.”

-인성은 어떤지요.
“무엇보다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의 인성입니다. 다른 학교에서 온 선생님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인사성과 예의죠.”

-선생님 개인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 '오명성'은 어땠는지요.
“학창시절은 어머니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북에서 넘어오신 분으로 무척 강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식이 원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셨고 그래서 자연스레 그런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자녀 교육 과정에서 부부간의 이견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떠신지요.
“물론 우리 부부도 사소한 이견으로 충돌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식교육에 대한 큰 틀은 같습니다.”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는지요.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가 못 이룬 것을 대신해 주는 존재나 부모에 딸려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독립된 개체로서의 아이를 인정하고 자율적인 태도를 길러서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같습니다.”

-대전교총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대전교총의 문제점은 무엇인지요.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대 이상의 회원 비율은 높지만, 신규 선생님들의 가입이 저조합니다.”

-이유가 있나요?
“교총의 보수성 이미지가 한 몫 한다고 봅니다. 물론, 희생과 봉사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달라진 젊은 교사들 마인드도 있습니다.”

-대전교총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지방분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현재 국가직이지만, 지방화 시대에 따라 교사들도 언젠가는 지방직으로 전환됩니다. 그때를 대비한 자구책이 필요합니다. 그 대안이 바로 교직단체입니다. 교사들의 권익과 교육적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교총의 역할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죠. 전통 있는 교육단체의 힘을 통해 교육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는 선생님께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얘기들도 들립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긴 안목을 가지고 많은 계획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전둔산여고의 교장으로 있는 현재, 제 계획은 어찌 보면 단순합니다. 그동안 근무했던 많은 학교가 다 의미 있고 소중하지만 대전둔산여고는 제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곳이어서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합니다.
“40여 년 간 교사생활을 하면서 과분한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요사이 저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퇴임 후에 뒤에 오는 우리 선생님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오명성 교장은 누구
▲학력=대전자양초, 충남중, 대전고(49회), 공주사범대 수학교육과, 충남대 교육대학원 수학교육전공(석사), 충남대 자연과학대학 대학원(이학박사 순수수학전공) 졸업
▲경력=대전교육과학연구원 연구사, 충남고 교감, 대전용산고 교장, (현)대전둔산여고 교장, (현)대전시교원단체총연합회장, 대전교육청 수학ㆍ과학 영재학급 수학강사, 고등학교 수학교과서 저자(두산 동아), 대학수학능력시험 검토 및 출제위원

대담=오주영 문화부장ㆍ정리=윤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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