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사자 유해 발굴 개토식이 7일 대전 대덕구 장동 계족산 주차장에서 열려 육군 제32보병사단 김완태 사단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발굴활동을 위한 개토식을 갖고 있다. 이민희 기자 photomin@ |
한국전쟁 발발 10여 일 만인 1950년 7월 16일, 미8군 제24사단이 투입된 금강방어선이 무너졌다. 밤 사이 금강방어선에서 철수한 미 24사단은 대전에 집결해 다시 방어선을 구축한다.
미8군 사령관으로부터 이들에게 제1기병사단이 상륙, 영동으로 이동하는 20일까지 대전을 사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미 24사단 34연대는 계족산을 중심으로 갑천에 저지선을 구축했고, 나흘 간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
끝내 대전은 함락됐고 미군 병력 상당수가 상실 됐으나, 이 나흘 간의 '대전전투'는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하 속도를 늦추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이 전투에는 미군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민간인 노무자들이 상당수 투입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고, 또 전장에서 희생된 한국군이나 민간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는 수습되지 않은 '무명용사'들의 유해가 전장의 상흔을 간직한 채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무명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사업이 7일 첫 삽을 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6·25전사자 유해발굴 사업 일환으로 육군 제32보병사단은 이날 대덕구 장동 계족산에서 대전전투 당시 미수습된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개토식을 가졌다.
32사단은 앞으로 4주간 대전전투가 벌어졌던 계족산과 명막산, 마분산, 지봉산 등지에서 유해발굴 활동을 전개한다.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2000년 전쟁 당시 수습되지 않은 전사자의 유해를 수습,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한 취지로 국방부에 의해 시작됐다. 대전과 충남에서는 2009년 육군 제32사단에 의해 첫 유해발굴이 시작됐으며, 대둔산과 대평리 일대에서 진행된 발굴 작업을 통해 지난해까지 모두 19구의 한국군 유해가 발굴돼 현충원에 안장됐다. 올해 32사단의 유해발굴은 지역에서는 사실상 마지막 발굴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한 대전전투 무명용사들의 유해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32사단 관계자는 “이번 발굴 사업의 목적은 미군의 전투 당시 탄약을 날라주고 길안내 역할을 하는 등의 목적으로 투입됐던 민간인 노무자 등 무명용사의 유해를 찾는데 맞춰져 있다”며 “신빙성 있는 추가 제보가 없다면 대전지구 전투와 관련한 유해발굴 작업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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