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주 자료조사부 차장 |
꽃이 싫었다. 정확하게 배꽃이 싫었다. 낮은 산 밑으로 펼쳐진 과수원에 배꽃이 피는 4월이 되면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꽃이 피면 열매를 잘 맺게 해주기 위해 꽃가루의 수정을 도와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렇게 열매가 맺으면 한 가지에 가장 좋은 놈만을 듬성듬성 남기는 열매 솎는 작업을 해야 했다. 풀 뽑기, 약 주기…. 소소한 작업은 봄부터 결실을 맺는 가을 한 가운데를 지나 늦가을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넓디넓은 과수원을 잰걸음으로 돌아다니며 하나에서 열까지 일을 도맡아 하던 사람은 엄마였다. 과수원의 한 해 농사가 온전히 엄마의 손에 좌지우지됐다. 그런 까닭에 집은 내게 늘 텅 빈 공간이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엄마 대신 할머니가 나를 맞았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내게 '배꽃이 피는 건 엄마가 없다'는 의미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하는 꽃을 무덤덤하다 못해 미워하게 만든 이유다.
벚꽃이 한창이던 지난 4월, 꽃구경 가고 싶어 난리를 치던 내게 한 후배가 “벚꽃보다 더 예쁜 배꽃을 곁에 두고 가긴 어딜 가냐”며 핀잔했다. 순간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마도 엄마가 과수원 일에서 손을 떼던 해부터였던 것 같다. 그토록 싫어하던 배꽃을 내가 무덤덤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 배꽃이 흐드러진 날에도 이제 엄마는 그냥 먼발치에서 과수원을 바라보기만 하신다. 가지마다 열매가 빼곡히 달려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자식만큼이나 애틋하게 보듬고 가꾸느라 엄마의 머리가 배꽃처럼 하얗게 셌다. 엄마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붉은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려야겠다.
김은주ㆍ자료조사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