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인의 대전도시공사 사장 |
원도심 문제를 간략히 요약하면 공공기관과 관련기업들이 떠나면서 유동인구 감소 - 상업기능 퇴조 - 빈사무실과 상가 증가 -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연쇄 현상이다. 그러나 설명은 쉽지만 그 대안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전 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대부분이 겪고 있는 성장통(成長痛)의 하나지만 어느도시도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원도심 문제는 이제 지역주민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고 공무원에게는 정책과제, 정치인에게는 슬로건, 언론인에게는 중요한 취재원이 돼버렸다.
대전의 원도심은 넓게는 동구, 중구, 대덕구를 가리키고 좁게 보면 대전역에서 중앙시장을 거쳐 충남도청에 이르는 거리와 그 주변 상업지역을 지칭한다. 1905년에 경부선철도 개통과 함께 대전역이 문을 열었고 1932년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며 본격적으로 형성된 원도심은 6ㆍ25전쟁이후 중앙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무려 100년 가까이 대전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으니 원도심이 곧 대전사람의 삶이었고 대전의 역사였다.
대전사람이라면 누구나 원도심의 식당에서 모처럼의 가족외식을 했고 거기 있는 영화관에서 '벤허'와 '맨발의 청춘'을 봤을 것이다. 중앙시장의 옷가게에서 설빔을 장만했고 중앙로의 금은방에서 결혼반지를 샀고 그 거리에 있던 은행에서 적금통장을 개설했었다. 전쟁통에 20일간 임시수도 역할을 해냈고 4ㆍ19의 함성이 울린 곳도 2002년 붉은악마의 태극기 물결이 출렁인 곳도 바로 원도심이었다.
한국현대사와 함께하며 한세기 동안 누렸던 원도심의 지위는 둔산개발이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 그늘이 드리웠고 지난 80년간 원도심의 한축이었던 충남도청이 올해 말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면 지난날의 영화(榮華)는 빛바랜 사진과 중장년의 추억속에만 남게 될 지도 모르겠다.
원도심의 침체를 단순히 그 주변에서 영업하는 일부 상인들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은 편협한 단견(短見)이다. 서울의 예에서 보듯 폭 1㎞ 남짓의 한강을 사이에 두고 주민들간에 내재된 갈등은 선거때마다 불거지고 있어 언제 수면위에서 폭발하게 될지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다. 대전도 동서간에 문화 및 의료시설 그리고 학군 선호도까지 차이를 보이며 부동산 가격의 뚜렷한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대전시민이라는 동질감이 원도심과 신도심이라는 이질감으로 갈라지는 중이다. 대전시에서도 LED 거리조성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워낙에 정책외적인 변수가 많다보니 단기간에 손에 잡히는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년 창사 20주년을 앞두고 대전도시공사가 원도심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도시공사가 이전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원도심에 큰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신도심의 번듯한 신축건물대신 원도심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대전시의 개발업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이곳의 문제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고 지역민과 호흡하며 더 가까이서 대안을 찾아보자는데 있다. 그간 중앙시장 주차빌딩 건설 등 원도심 활성화 사업에 참여해 왔고 사옥이전 외에도 순환형 임대주택건설 같은 지역 맞춤형 사업시행으로 원도심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대전도시공사는 신사옥에 구내식당을 설치하지 않았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우리직원들과 방문객들이 가급적 인근의 식당을 이용함으로써 작은 것부터 지역사회에 기여하자는 의미다. 필자도 식사시간 무렵에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맛깔스런 원도심표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사무실 근처 맛집 두어곳을 찾아 놓았음을 귀띔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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