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기 대전대 교수ㆍ정치학 |
그런데 우리는 막상 정치를 잘 알지 못한다. 왜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을 뽑을 때 정당의 공천이 필요하고, 또 정당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각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이나 노선을 정확히 알고 선거에서 투표하는 유권자도 아마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가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지도 잘 모른다. 왜 선거때만 되면 평소 보이지 않던 후보자들이 매일 아침 집 앞에 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어 국회를 정상화 하겠다고 하는데, 국회가 무슨 일을 하고 국회의원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한마디로 정치가 이미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데 우리는 정작 정치를 잘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초ㆍ중ㆍ고교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정치를 배웠음에도 그렇다. 우리가 학교교육을 통해 정치를 나름대로 배웠다고 하지만,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정이 이런데 앞으로 그나마 학교교육을 통해 배웠던 정치가 사라진다고 한다. 학교교육의 중심이 되는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내년부터 '정치'과목이 없어진다. 학교의 '정치교육'은 단순한 교육과정과 교과목 차원에서 가르치고 입시를 위해 배우는 과목이 아니다. 정치과목을 통해 우리는 바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국가의 존립근거와 민주주의의 내용과 절차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의 역할과 임무를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와 권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정치과목을 교육과학기술부는 국민전체의 의견을 수렴하기는커녕, 국회인 입법부와 사법부를 포함한 다른 국가기관의 의견을 수렴도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판단하여, '정치'과목을 기존의 '법과 사회'과목에 합쳐 '법과 정치'라는 과목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법과 정치'과목의 교과내용은 '정치교육'보다는 '법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결정은 '정치'과목의 폐지만이 아니다. 고교 1학년 '사회'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전환됨에 따라서 이제 사회과목에서 필수로 배웠던 정치교육의 내용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제 우리 학생들이 정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중학교 사회과목 중 단 2단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학교 사회과목에서 남북한 통일문제는 지리과의 소관이니 그 또한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정치교육'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주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념을 지닌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괴리가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단기적으로는 학교 정치교육의 위기로 나타나게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우리 시회의 위기와 한국의 정치발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간 우려가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역대 정부에서 '정치교육'이 정권의 유지와 홍보를 위해 악용되는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정치교육'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교육'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현재 우리 민주주의가 과거 역대 정부가 '정치교육'을 악용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도 교육의 근간이 되는 학교 현장에서 '정치교육'이 사라지질 위기라는 점은 어딘가 정부의 교육이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된다. 왜 '정치교육'이 없어져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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