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복남 충남도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
정부는 다문화가족 자녀의 건강한 성장환경 조성과 결혼 이민자의 안정적 정착 및 자립역량강화, 그리고 국제결혼중개 관리 및 입국 전 검증시스템 강화 등 3개 영역을 중심으로 53개 과제에 925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의 외국인 관련 정책과 예산의 대부분이 투입되는 다문화가족지원사업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크기 때문에 시행계획 발표는 대개 열띤 논의를 일으키곤 한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에는 위원회 회의에서 부차적으로 보고된 국민인식조사 결과가 위원회의 주요 회의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정책사업 내용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국민다문화수용성조사에 의하면 조사에 응한 국민 2500명 중에서 '문화공존'(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찬성하는 비율이 36%에 불과하며 이는 유럽 18개국 찬성 비율 74%에 비해 매우 낮은 것으로서 다문화사회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 아직은 긍정적이지 못함을 알리고 있다.
이런 조사결과와 관련해 다문화사회 이행과 다문화정책에 관한 의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또한 4ㆍ11 총선에서 여성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 당선, 그리고 중국동포에 의한 살인사건 등에 의해 가열된 이주민관련 논쟁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 '제노포비아'가 자주 눈에 띄고 있는데 여전히 이 말이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외국인혐오(증)'라는 주석을 따라 붙이곤 한다. 국무총리 역시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이나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지 않도록 개선대책 마련과 추진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제노포비아'는 정말 '외국인혐오', 즉 외국인이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감정을 지칭하는 단어에 불과할까? 물론 인종이나 혈통을 매우 중시하거나 낯선 외국인을 그냥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사회ㆍ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회풍조가 여전히 강한 우리사회 속에서 취약계층에 속하는 많은 외국출신 이주민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제노포비아는 단순히 감정차원의 '싫음'의 문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존이 위협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 단어가 유래한 어원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즉,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낯섦'을 뜻하는 제노(xenos)와 '공포'를 의미하는 포보스(phobos)에서 기원하는 단어인데, 결국 사람들이 외국인이나 이방인과 같이 낯선 사람들을 접할 때 일반적으로 느끼는 자연스러운 공포(fear)인 것이다. 여러 문화권들에서 낯선 사람이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사악한 존재로 인식되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혐오'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에 대한 '공포'에 기인할 수도 있다. 이번에 발표된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 조사결과는 '외국인 근로자와 노동시장 중첩 가능성이 높은 단순노무직 등의 수용성이 낮은 것'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주민으로 인한 일자리부족,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임금과 근로조건 악화 등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주민의 유입을 자신과 가족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위험한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저학력, 저소득집단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사회적 선입견과 연결하여 외국인들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기존의 여러 연구결과들을 통해서도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문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고 제노포비아가 사회문제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사회구성원들의 무의식적인 혐오를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극한의 생존경쟁으로 내몰릴 수 있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국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