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배재대 총장 |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몸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나 마음은 이미 상상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아무런 글 조각도 적지 못하고 또 한참을 서성이다 창밖을 본다. 가로등 아래 외롭게 서 있는 벚나무는 자신의 꽃잎을 떨궈내고 푸른 잎으로 단장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세차게 내리는 봄비에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어느새 푸른 잎들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의연한 자세가 퍽이나 인상에 남아 허겁지겁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려 본다. 아무리 예쁜 꽃이 피어난다 해도 그 계절이 항상 맑을 수는 없다. 예쁜 꽃들이 자신이 필 때를 고르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이 질 때 역시 정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저 꽃은 피어날 때가 되어 피는 것이고 저야할 때가 되어 떨어지는 것, 그것이 자연의 섭리일 게다. 그러니 가뜩이나 짧은 만개의 순간에 대한 연민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며칠 전 밤에 내렸던 봄비와 그를 처연히 받아내는 벚나무가 퍽이나 어울리는 듯도 하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 역시 봄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봄꽃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네 삶의 행로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시시각각 생겨나게 된다. 막 꽃잎을 틔워내기 시작한 봄꽃들에 세찬 빗방울이 퍼부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겨나는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쉽게 멈춰서기도 하고, 돌아가려 하며 또는 눈을 감아 외면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눈을 질끈 감는다고 해서 눈앞의 어려움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그 어려움을 온전히 견뎌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자신의 소중한 꽃잎들이 떨어져 나가도 한 눈 팔지 않고 우직한 자세로 차가운 빗줄기를 견뎌내는 벚나무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에 펼쳐지는 난관에 대해 강직한 자세로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쉽게 허무주의자가 되어버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쉽게 허무주의를 품는 것은 요즘의 청년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무방비상태다. 가벼운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와 자신에 대한 불신이 우리 스스로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창밖의 푸른 나무들을 본다. 푸른 나뭇잎들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더욱 싱그러워 보인다. 자신에게 닥쳤던 세찬 봄비의 고난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벚나무가 오늘따라 더욱 의연해 보인다. 이 벚나무의 푸른 잎사귀들은 여름을 온전히 견디고, 또 가을을 거쳐 겨울을 지나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꽃잎보다 더욱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우리네 앞에 닥친 난관 앞에서 망설이고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멈추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생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세찬 빗줄기마저도 온 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봄꽃들은 차가운 봄비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자신의 생을 피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초록을 발산하고 있다. 우리네 삶도 힘들고 어렵다고 멈추거나 회피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난관을 극복하고 의연하게 초록을 발산하는 나무처럼 말이다.
푸름이 그 어느 밤보다 싱그럽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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