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한 방송제작 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던 A(29)씨는 계약 기간인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첫 직장을 떠나야 했다.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오자 사업주가 퇴직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1년의 계약 기간을 채울 경우 A씨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업주는 A씨에게 계약 기간 이전에 조기 퇴직 할 경우 다시 1년을 재계약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A씨는 10개월 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첫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다시 구직활동에 나서고 있다.
A씨는 “재취업을 하려 하고 있지만 한번 당하고 나니 취업 자체에 신중하게 된다”며 “방송 제작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해당 분야의 경우 대부분이 계약직 형태의 채용이어서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88만원 세대'로 이름 붙여진 우리 사회 청년 비정규직의 서글픈 현실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본격화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해마다 수많은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으며, 어렵게 '바늘 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더라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절망하곤 한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청년 비정규직의 비애는 단순히 취업의 문턱에서 끝나지 않는다.
취업 후에도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경제난에 허덕이고,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 등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상황들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들에게 붙여진 또 하나의 딱지가 이른바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란 신조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는데 있다. 정부 통계와 노동계 분석에 다소 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청년 층 임금 근로자 2명 중 1명이 사실상 비정규직 신세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비정규직 숫자는 599만 5000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 1751만명의 34.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15세 이상 29세 이하의 청년 비정규직은 모두 124만 3000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숫자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또 15세 이상 29세 이하에서 전체 임근 근로자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50.5%(15~19세 69.4%, 20~29세 31.6%)로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동계의 분석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3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내놓은 '201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임금 금로자 1751만 명 중 전체 비정규직은 861만 9000여 명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29세 이하의 비정규직 숫자는 193만 1167명으로 분석된다.
연령대 별로는 20대에서 전체 임금근로자 342만 6873명 중 비정규직이 171만 3553명으로 절반을 넘어서고 있고, 10대에서는 비정규직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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