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특허청 차장 |
특허제도도 1474년 유럽의 베니스에서 인재확보 차원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지금의 베니스가 아름다운 운하와 곤돌라 뱃사공의 노래가 연상되는 관광의 중심이라면, 14~15세기의 베니스는 무역선들이 부두를 가득 메웠고 상인들의 흥정소리가 드높았던 유럽 무역의 중심이었다. 1474년은 무역도시로서 베니스의 영광이 막 정점을 지나는 시점이었다.
베니스는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진행되었던 십자군 전쟁의 보급기지 역할을 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했다. 군사적, 상업적으로 요충지에 자리한 베니스는 제해권과 무역권을 장악하면서 14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의 부국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되면서 베니스는 바다의 주도권을 잃기 시작했다. 무역의 맹주 자리를 내놓게 된 베니스는 상공업국가로의 변신을 꾀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고안해 낸 것이 특허제도였다.
당시 유럽에는 전쟁의 여파로 수많은 고급 기술자들이 의탁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베니스는 특허제도를 통해 독점 실시라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기술자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기술의 유입을 꾀했다. 베니스의 이러한 창의적인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는 무역업의 퇴조에도 유리공업 등의 발전으로 베니스가 100여년 이상 더 전성기를 지속했던 것으로 증명된다.
기술과 두뇌의 국제적인 이동이 15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빈번한 지금, 기술자들에게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인재 유치를 위한 노력과 책임이 꼭 정부차원에서만 고민하는 문제는 아니다. 기업들도 소위 S급 인재들을 모셔오고, 보유한 인재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 파격적 연봉을 포함한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이러한 인센티브의 하나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직무발명제도다. 최근에 특허발명의 80% 이상이 기업의 종업원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 권리는 대부분 해당 기업으로 귀속된다. 발명자들은 회사에서 자체로 규정한 직무발명제도에 의해 보상을 받게 된다. 결국 합리적인 직무발명보상제도의 실시가 종업원들의 연구의욕을 북돋우고 더 나은 발명을 만들게끔 이끄는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과거 천문학적인 직무발명 보상금을 둘러싼 소송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청색 LED 발명자인 일본의 나카무라 슈지가 결국 보상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나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은 효과적인 직무발명보상제도의 실시가 중요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아쉽게도 직무발명제도와 관련한 우리 기업의 현황은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2011년 지식재산활동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의 직무발명 제도 실시율은 40%대로 일본이 80%를 상회하는 것과는 아직 상당한 격차를 갖고 있다. 특허청은 직무발명제도 설명회, 직무발명제도 운영 우수기업에 대한 포상, 직무발명제도 도입기업에 대해 정부지원사업 대상자 선정시에 가점 부여 등 직무발명제도를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업들도 실효성있는 직무발명제도의 정착이 결국 기업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창조적인 활동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는 결국 더 나은 발명, 더 큰 수익을 가져오는 촉매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15세기 베니스가 특허제도의 구축을 통해 인재들을 유치하여 국가경쟁력을 키웠듯이, 우리 기업들이 직무발명보상제도의 정착을 통해 인재를 유치하여 그들의 열정을 살아 숨 쉬게 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발돋움하길 기대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