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현장의 최일선에 선 경찰 지구대에선 매일 밤 쉴새 없는 취객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된 이후 '불금'(불타는 금요일)과 '놀토'(노는 토요일)의 사이로 일주일 중 가장 바쁘다는 금요일 밤. 유성지구대 경찰관들의 야간근무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편집자 주>
▲ 사진 왼쪽부터 1.취객 난동 신고를 받고 편의점 앞에 출동한 경찰 2.한 취객이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3.취객의 난동으로 집기가 파손된 지구대 내부. |
지난 27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유성지구대. 갑작스레 짧지만 정적을 깨우는 무전 신호가 들어온다.
봉명동 한 편의점에 만취한 손님이 들어와 점원에게 행패를 부리고 시비를 걸고 있다는 신고다. 경찰관들은 신고된 지역의 위치를 확인하고 복장을 점검한 뒤 신속히 순찰차량에 몸을 실었다. 순찰차는 어둠이 짙은 거리를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갔다.
#27일 오후 10시 55분 봉명동.
대전의 대표적인 관광구역이자 술집과 식당이 밀집한 봉명동의 한 유흥가. 경찰이 도착한 현장에는 만취한 남성이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출동한 경찰은 남성의 상태를 확인한 뒤, 돈을 지불했다는 남성과 자신에게 폭언을 하며 맘대로 물건을 집어나갔다는 가게 점원 사이에서 신중하게 상황을 판단한다. CCTV 영상을 확인하자 술에 취한 남성이 점원과 경찰관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한 뒤 현장을 빠져나가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금요일 밤엔 취객들이 넘쳐나죠. 술만 취하면 다행인데, 가게에 들어가 그냥 물건을 들고 나가거나 집기를 파손하고 시비가 붙어 출동하게 됩니다. 지금은 다행히 술취한 분이 조금은 정신이 있고, 점원도 이해하고 넘어가 원만하게 처리된 경우죠.”
순찰차를 운전하는 지준구(38) 경사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27일 오후 11시 25분 유성지구대.
사건 해결과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지구대. 숨 돌릴 틈도 없이 지구대로 여러 명의 남성들이 몰려온다. 택시기사와 술취한 손님 간에 시비가 붙어 지구대로 직행한 경우다. 택시기사와 승객이 서로 간에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지구대 경찰관들이 양쪽의 주장을 듣고 사건 처리 여부를 묻자, 잠시동안 설전이 오가더니 승객이 사과하면서 사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밤 사이 지구대에는 이런 불청객(?)들이 수도 없이 찾아든다. 폭행 시비는 예삿일이고 택시 안에서 잠들어 버린 처치곤란의 만취 고객을 그대로 지구대로 싣고 오는 경우도 있다.
지준구 경사는 “택시기사들이 술취한 손님들과의 시비나 하차거부 등으로 지구대에 찾아오는 사건만 하루에도 수십 건에 이를 때가 있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1시 10분 장대동.
순찰 중인 차량에 급한 무전이 들어온다. 장대동의 한 술집에서 손님과 주인간에 술값 때문에 시비가 벌어졌다는 연락이다. 차를 돌려 급히 달려간 현장엔 주인과 손님들 간에 실랑이가 오가고 때로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출동한 경찰의 설득과 중재가 있고 나서야 가까스로 양쪽 모두 화를 가라앉히고 술값 지불에 합의한다.
배진형 경사는 “순찰을 한번 돌때마다 술값 문제 등으로 인한 시비가 7~8건씩 접수된다”며 “많을 때는 밤새 20번 정도도 출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2시 유성지구대.
순찰조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두 명의 남성이 멱살을 잡고 지구대로 들어선다. 이번에도 택시기사와 승객간 시비다. 경찰관들이 이들의 얘기를 듣던 중, 만취한 손님이 택시기사를 향해 다가간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에게 욕을 하던 만취 승객은 급기야 현관 옆 쓰레기 통을 집어던진다. 지구대 사무실의 집기가 파손되고 이 남자는 결국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됐다. 이 남성에게 얼굴을 얻어맞은 이기성 팀장은 “술에 취해 그런 것이니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겨 버린다.
소란이 멈춘 사이, 순찰차에 잠시 몸을 기댄 경찰관이 내뱉 듯 말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날이 풀리면서 사건이 더 많아지죠. 하루 하루가 힘들지만 시민들의 안전이 달린 문제니 최선을 다해야죠.”
오전 6시 10분, 경찰관들은 어느새 뜬 아침 해를 보고 세면이라도 해야겠다며 화장실로 향한다. 밤샘 근무로 입속은 까끌하고 피부는 거칠어졌다. 졸지 않기 위해 마신 커피만도 대여섯잔. 경찰관들은 교대전까지 졸지 않기 위해 쓰린 속에 다시 커피를 들이킨다.
순간 정적을 때리는 무전 소리. 해당 지역의 담당경찰관들이 다시 순찰차를 타고 현장으로 향한다.
강우성 기자 khaih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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