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웰빙'과 미국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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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웰빙'과 미국산 쇠고기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건 소비자 불신

  • 승인 2012-04-29 14:17
  • 신문게재 2012-04-30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있다. '안녕, 복지'란 뜻은 어디 가고 '잘 먹고 잘살자'라는 콩글리시가 됐다. 잘 먹자고 꼭 영어로 쓴다면 이트 웰(eat well)이라 하고 건강에 좋다고 하려면 '웰니스(wellness)'로 써야겠지만 오ㆍ남용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웰빙 채소와 웰빙 솥밥 먹고 웰빙 사우나에 가고, 사랑도 웰빙 데이트 코스에서 웰빙 사랑이다. W(웰빙)에 I(인플레)ㆍS(싱글)ㆍE(간편)을 더해 와이즈 식단이라고도 한다.

최근의 쇠고기 소비 증가 또한 웰빙 바람을 타고 있었다. 웰빙 쇠고기 쌈밥, 웰빙 쇠고기 구이, 웰빙 쇠고기 당면찜, 웰빙 쇠고기 전골, '웰빙 육사시미'까지 등장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저가인 호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증가와 관련이 있다. 미국산은 관세 40%가 해마다 2.7%씩 줄어 15년 뒤 완전 철폐되면 가격 인하 효과가 클 것이다. 지역 것을 먹자는 먹자는 '이트 로컬리(←Eat locally grown food)'나 동네가게 이용(Shop nearby), 애국심 마케팅 에만 기댈 수 없게 됐다. 미국산 쇠고기를 사봤다는 소비자가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그러던 소비세가 한 풀 꺾이고 있다. 광우병의 영향으로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이마트는 52%, 홈플러스는 25% 나 감소했다. 미국산이 문제인데 호주산이 15% 줄고 한우까지 10% 이상 소비가 줄고 있다. 설렁탕과 갈비탕 등 쇠고기를 재료로 하는 음식점이 함께 피해를 보고 있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으로 타격이 가장 큰 지역 축산농가는 폐업 위기에 몰릴 지경이다. 소비자의 불안과 불신은 무섭다.

쇠고기에는 특히 민감하다. 식문화로 문화 유전자를 살펴볼 때 그 표본감이 바로 쇠고기다. 지구상에서 쇠고기가 120여 부위인 나라는 우리뿐이다. 일본인이 15 부위, 미국인이 35 부위로 나누기는 한다. 소뼈도 우려먹고 소 쓸개의 결석인 우황을 꺼내 먹는 한국이 우육(쇠고기) 문화권이면 중국은 돈육(돼지고기) 문화권, 일본은 어육(생선) 문화권이다. 지난주 어느 경찰서 의무경찰 식당에서 본 대로, 미국산 설렁탕을 내놓으면 생난리를 치는 게 아직 우리 식문화이며 정서다.

다만 문화와 경제는 수시로 줄다리기를 한다. 또 이런 측면도 있다. 불모의 땅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면 현지인들은 사막화를 촉진하는 소를 키운다. 그걸 보고 우물 대신 차라리 콘돔이나 주자고 주장할 수야 있겠지만 생존, 생계에 관계된 일을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 수는 없다. 아담 스미스나 다산 정약용 선생도 강조한 경세제민(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이 경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과학적 팩트(사실)'를 좀더 배우기 바란다”고 했다. 이에 여당 대표는 “쇠고기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국민 정서가 스며들어 있다”며 받아쳤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은 '과학적'이어야 한다. 과학적인 근거가 불충분하더라도 수입 잠정 중단 등 단안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럴 때다. 이번 파동은 웰빙(안녕과 복지), 웰니스(건강)에 관해서는 라면국물 하나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곱씹어보게 한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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