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석]부끄러움을 누가 가르칠 것인가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류인석]부끄러움을 누가 가르칠 것인가

[시사 에세이]류인석·수필가

  • 승인 2012-04-23 14:07
  • 신문게재 2012-04-24 20면
  • 류인석·수필가류인석·수필가
▲ 류인석·수필가
▲ 류인석·수필가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는 무사태평의 실낙원을 등지고 죄악과 부끄러움이 판치는 갈등의 땅으로 나선다. 아담과 이브는 그때부터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또 부끄러움도 깨닫기 시작한다. 이렇듯 에덴동산의 창세기 신화는 인간 양심 최초로 염치(廉恥)의식과 수치(羞恥)의식을 가르친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것도 바로 염치나 수치를 아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의 세태는 염치의식도, 수치의식도 없어지고 있다. 미국의 어느 시인은 “나는 차라리 돌고 돌아 개와 같이 살았으면…/ 그들은 삶에 땀도 흘리지 않고 불평도 않는다./ 어두운 밤에 죄 때문에 우는 일도 없을지니…”라고 읊었다. 고된 일도 없고 불평도 없고, 따라서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있을 수 없는 개의 삶을 부러워했던 이 시인의 노래는 인간의 윤리적 가치와 양심을 확인하는 역설적 찬미다.

부끄러움이란 인간에게 자아확립의 계기이며 인격수양의 동력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곧 염치고 양심이다. 누구나 인격을 논할 때는 반드시 양심과 염치가 기준이 된다. 염치의 영역은 넓다. 수줍음, 쑥스러움, 창피, 치욕, 불명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누구나 부끄러움을 깨달을 때는 얼굴색부터 붉어진다. 아담과 이브가 최초로 깨닫기 시작한 양심과 염치의 순수한 표현이다.

부끄러움에는 또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도 있다. 자의적 비굴과 타의적 굴종, 또는 군림과 추종도 포함된다. 돈과 권력만 바라고 사는 탐욕의 인간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 치욕이고 부끄러움이다. 치욕에 대한 저항은 염치 수호다. 염치야말로 인간고유의 도덕과 윤리의식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가히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 만하다”는 맹자(孟子)의 교훈처럼, '염치'는 깨끗하고 조촐한 부끄러움을 뜻한다. 또 공자(孔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라”고 훈계했다. 수 많은 명언절구가 아니더라도 동ㆍ서양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은 염치가 무엇이며, 이 사회에서 왜 염치가 필요한 것인지를 명료하게 가르치고 있다.

거칠었던 총선(總選)의 바람은 이미 끝났지만 부끄럼 모르는 파렴치한들이 아직도 곳곳에서 판치고 있다. 부끄러운 사실이 들통 나자 자살을 택한 어느 대통령은 그래도 염치를 아는 편이었다. 뇌물 먹고도 무죄 억지 쓰는 뻔뻔스런 어느 전직 여자재상(女子宰相)의 몰염치…. 그래도 자기만이 '양심'이고, 자기만이 '이브'라고 떠들어대며, 국민들을 향해 “나를 따르라”고 소리쳐대는 모습은 가히 파렴치한 급이었다. 도덕과 윤리는 기(氣)가 죽어 졸부들만의 가슴에서 콩닥대고 있을 뿐이다.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자아의 정립과 통제'를 추구하기위한 자기처벌의 표현이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부정비리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이 시대 어느 누가 자기를 처벌할 것인가. 자기처벌의 기초가 되는 '자아정립과 통제'는 교육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의 세태는 부끄러움을 교육하는 곳이 없다. 학교도 사회도 나라도 시대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정치와 통치, 그리고 교육이 오히려 부끄러움의 정서를 요절내고 있다.

교단의 바른 교육풍토를 망친 것도, 참교육을 빙자한 위선교육자들을 용인한 것도 바로 통치권력 때문이다. 좌파정권 10년, 통치가 조장하고, 정치가 방관하는 동안 국가관ㆍ역사관 등 모든 가치관 교육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염치도 수치도, 윤리도덕의 가치관도 모두 무너졌다. 다가오는 대선정국을 앞두고 또 다시 회오리칠 좌우 이념대결도 잘못된 정치, 통치가 근본 원인이다.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무리들은 따로 있다. 이 시대의 부끄러움을 누가 가르칠 것인가. 가치관 교육정책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