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 가면, 찬송가 부르는 소리와 불경 외는 소리, 목탁소리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장례 예식이 서로 맞붙어 있는 경우 서로에게 피해가 될 소지가 있으면 집례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장례식장에 자주 가게 되는 대전남부교회 담임 류명렬 목사의 말이다.
비단 장례식장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서로의 종교를 폄하하다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종교 갈등은 가정 불화는 물론 국가간 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정도로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류 목사는 “우리 사회는 종교의 영역에 있어서도 이미 다원주의(pluralism)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각 종교의 독특성을 살려서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게 하지 것이 바람직하다”며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근본 진리를 사람들이 받아들여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종교 간의 대립과 충돌은 막아야 한다”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이 신봉하는 교리에 충실하되 타 종교에 대한 사랑과 관용의 정신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무례한 종교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 류 목사는 “타 종교를 폄하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다원화된 사회의 문법을 어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내동성당 주임 김정수 신부는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가 서로 다른 종파의 정체성과 신앙과 교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상호 인간관계를 맺어야 대화의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타종교의 핵심 교리와 신앙, 문화, 전통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잘 이해하고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땅에 생명·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전 국토를 탁발 순례했던 전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은 일찍이 “종교의 벽을 허무는 데 불교가 먼저 앞장서자”고 강조했던 인물이다.
해마다 사월 초파일이 되면 천주교 대전교구청 교구장인 유흥식 라자로 주교는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난 화분을 들고 대한불교천태종 광수사를 찾는다.
유흥식 주교는 로마 교황청 주교대화평의회 의장 추기경의 축하메시지를 전하고 광수사 주지 장도정 스님과 오찬을 함께 하며 덕담을 주고 받는다. 이에 답해 매년 성탄절이 되면 광수사에서도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사찰에 걸고 교구청을 방문해 성탄의 기쁨을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
종교간 벽 허물기에 앞장서고 있는 유 주교는 “세상의 순리대로 모든 사람들이 서로 나누며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종파를 떠나 지역 종교인 모두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주교는 “모든 종교는 그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있어서는 목적이 같다”며 “지역 종교인들이 앞장서 종교간의 갈등과 벽을 허물고 고통을 겪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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