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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초대석]엄정자 무용가

  • 승인 2012-04-15 13:29
  • 신문게재 2012-04-16 20면
  • 엄정자 무용가엄정자 무용가
▲ 엄정자 무용가
▲ 엄정자 무용가
책을 덮자마자 우연의 일치라고는 기막히게 절묘한 타이밍에 라디오에선 '오, 솔레미오'가 흘러나왔다. 미처 다 보지 못한 책 한 권을 들고 무작정 아래 지역으로 내려왔다. 모든 걸 내려놓고 세속적인 삶을 외면하고 사는 모습이 좋아 교류를 하며 지내던 내외가 이곳 전남 고흥으로 둥지를 옮겼다는, 이곳에 와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산다는 전갈을 받고도 2년여가 지난 이제야 내려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대궐 같은 집이었다. 대전 근교에서 다 허물어진 초가집을 보수하여 살았던 이 내외의 그 전 집에 비해선 말이다. 예쁜 다락방이 두 개나 있었고 무엇보다도 책을 볼 수 있는 또 한 채의 집까지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들이 평소 뿌려온 지인들과의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그 집에서 나는 간밤에 별이 쏟아지는 광경과 보름달을 느낄 수 있는 호사를 누렸고 오늘 아침 바람에 살랑이는 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방과 후 학교 강사로 부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마치 내가 이집의 집주인이라도 된 양 아침햇살을 마음껏 만끽하며 미처 다보지 못한 책을 마저 읽을 수 있었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먼저 간 그이가 평소 즐겨 불렀던 오, 솔레미오 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는 그를 위해 눈물을 찔끔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은 되었지만 그래도 아름답다고 스스로 생각 되어지는 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흥이 있는 지금, 그 노래까지 듣게 되었을 때는 저 안 깊숙이 내재되어 있던 그리움이라는 정서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랬다.

이 4월의 첫 주말을 나는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내일까지 계획하고 있는 이 여행의 끝이 어디까지 될는지 지금은 나도 모른다.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할 수 있는 이 여행에서 나 자신 무엇을 찾아내려 하는지 그냥 시간의 흐름에 나를 던져볼 예정이다. 내려오면서는 그러한 생각을 한 것 같다. 거의 4시간 정도의 운전을 하면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어디에서나 지천으로 보이는 동백꽃 나무들을 보면서 소원 푸는구나 했다고나 할까? 왜인지 지난해부터 동백꽃에 마음을 뺏겨 가까이 서 보고 싶어 했으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에 못 옮긴 것이 이제야 자연 스레 채워는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웰 다잉 (Well Dying) 이란 것을 생각 했던 것 도 같다.

삶의 양보다도 질이라는 외침으로 줄곧, 이 시간 이후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 까지의 모습을 생각 해 왔다는 것은 그만큼 뒤의 삶을 생각해야 할 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일 게다. 10년 후의 내 모습…. 별 다른 일이 없으면 20년 후의 내 모습….그러면서 불꽃처럼 그냥 뜨겁게, 마치 동백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 있을 때 낙화하여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같이 살짝 삶에 대해서 그런 유혹도 잠시 스쳤던 것도 같다.

나이가 들면서 본인의 의지하고는 달리 다른 모습으로 연명해 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라고 비켜갈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에서 라고나 할까?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성향으로 보아선 그건 순간의 생각으로 끝날 것 같다. 밝고 건강한 삶의 모습이 나였으니깐 말이다.

그러나 공장에서 찍어 낸듯한 삶,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삶의 모습은 아닐 것 같다. 굳이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위트있는 묘비명을 비유하지 않아도 20년 후의 내 묘비명에는 '여기 아름답게 살다 간 한 여인이 있다'라고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사람의 몸짓으로 모두가 공감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예술, 삶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내 나머지 삶의 모습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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