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잔재냐 근대 역사의 유물이냐의 논란의 중심에 선 선화동 영렬탑의 현재 모습. 손인중 기자 dlswnd98@ |
<속보>=“일본이 남긴 잔재냐, 국가에 목숨 바친 혼령을 모셨던 유물이냐.”
지난 52년간 따라다닌 대전 선화동의 영렬탑을 향한 정체성 논란이 이 지역 공원화사업을 앞두고 다시금 불붙고 있다.
영렬탑 철거 후 공원조성이라는 당초 계획과 반대로 열사 1700여 명의 혼을 모시던 지역의 유일한 탑이라는 점에서 영렬탑을 보존하면서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충남도청 뒤 선화동 언덕에 있는 영렬탑은 1942년 기단을 쌓을 때부터 수많은 부침을 겪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전사한 일본군의 위패를 두고자 한국에서 가장 큰 충혼탑 공사에 돌입했으나 태평양전쟁 패전과 해방으로 기초를 만드는 단계서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사 성격의 일본 충혼탑은 결국 완성되지 못했고 한국전쟁을 치르는 동안 빈 공사장으로 폐허처럼 방치됐다.
영렬탑 앞에서 1951년부터 거주한 전대근(89)씨는 “일본인들이 공사를 중단하고 떠난 충혼탑의 공터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30여 가구가 움막처럼 지냈다”며 “전쟁이 끝나고 희생된 육ㆍ해ㆍ공군ㆍ경찰ㆍ애국지사 위패를 모실 공간을 찾다가 일본인이 터를 만들고 떠난 이곳에 탑을 세운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1957년께 당시 대전시 전경 속 영렬탑.
|
영렬탑 동판에는 “도민의 정재 1000만환으로 1956년 1월 기공해 동년 10월에 준공됐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동판은 분실돼 찾을 길이 없다. 영렬탑은 지상 1층으로 높이 33m에 이르는 화강석 탑이다.
전씨는 “영렬탑을 세울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으나 일본군 위패가 한번도 보관되지 않았다는 점과 기반 공사가 돼있어 이곳에 영렬탑을 세우게 됐다”며 “국립대전현충원이 생기기 전까지 이곳이 추모장소였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힘으로 어렵게 세운 영렬탑은 2009년 6ㆍ25 전몰장병 1676명의 위패가 보문산 보훈공원으로 옮겨진 후 이제는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선화ㆍ용두 재정비사업에 따라 이곳에 양지근린공원 조성계획이 세워졌고 내달 초 도시공원위원회에서 영렬탑을 철거ㆍ보존이 결정될 전망이다.
대전문화연대 안여종 문화유산위원장은 “위패를 모시는 기능은 잃었어도 지난 60여 년간 대전을 대표하는 탑으로 자리매김했고, 기초는 일본이 만들었어도 탑의 완성은 우리 손으로 했다는 점에서 영렬탑을 보존해 공원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안ㆍ박수영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