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택]신(新)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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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택]신(新) '300'

[중도시평]안순택 논설위원

  • 승인 2012-04-10 14:31
  • 신문게재 2012-04-11 20면
  • 안순택 논설위원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를 침공해오자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그의 호위병 300 용사는 '뜨거운 문'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대군을 막아선다. 100만 명 대 300명, 이 처절한 전투는 영화 '300'에서 극적으로 그려졌다. 오늘 우리는 국회로 보낼 '민생전사(民生戰士) 300'을 뽑는다.

의회정치를 이끌어 나라의 곳간을 지키고 우리의 살림을 불려줄 우리의 호위병들이다. 오늘 밤, 늦어도 내일 새벽이면 19대 국회에 입성할 이들이 누군지 속속 밝혀질 것이다. 당선자들에게 미리 축하를 보내며, '주인'된 사람으로서 '머슴'인 그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전하고자 한다.

스파르타의 왕은 그의 용사들에게 '결사항전'과 '헌신'을 당부했겠지만, 새 선량들에게 무엇보다 신신당부하고 싶은 것은 “제발 좀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국회의사당은 결코 전투의 장이 아니며 국회의원은 투사가 아니다. 국회는 토론의 장이다. 나라와 지지층과 지역의 이익을 위해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거야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하지만 해머로 문고리를 부수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최루탄을 터뜨리는 일은 국민을 절망케 한다. 오죽하면 초등학생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바라는 게, “제발 좀 싸우지 말라”는 것이겠는가.

이상하게도 평소 뚜렷한 소신과 정의감으로 똘똘하던 사람도 국회만 가면 흐리멍덩해진다. 당론을 따르자니 소신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다. 정의를 내세우는 의원들도, 내가 보기엔 반드시 정의로운 것이 아닌데 그들은 정의라고 강조한다. 국민 다수가 정의라고 말하면 정의일 텐데 굳이 아니라고 우기기도 한다. 또 여당의 정의 따로 야당의 정의가 따로 있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 집단적 정의가 강조되면 정치는 선악의 대결이 되고 만다. 이성은 위축되고 감정과 감성이 정치과정을 지배하게 된다. 소속된 집단을 위해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하고, 멱살잡이하고, 해머와 전기톱을 휘두르는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소신은 뽑아준 주민의 이익이어야 하고, 정의감은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당론이 이에 어긋난다면 과감히 깰 줄 아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양심적으로 정의로움을 잘 조화시켜 진정으로 국민에 봉사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싸울 일이 없다.

대의정치의 본산인 국회가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고 '입법 전투'로 낮밤을 지새운다면 이미 중증인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혐오증은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것이다.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지 못하고 다시 다수의 독식과 소수의 횡포만이 횡행하여 진정한 정치가 실종된다면, 그것은 국회를 구성하는 의원 모두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다. 국민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싸울 시간이 있다면 민생부터 챙기기 바란다. 곳곳에서 민생이 무너진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선거 유세를 하면서 한 명이라도 더 손을 잡아보려 애썼던 마음을 기억한다면 민생에 소홀할 순 없다. 귓전에 들려주던 간절한 당부가 그것이었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일을 성취하려면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 초심, 둘째 열심, 셋째 뒷심이다. 그중 으뜸이 초심이다. 초심 속엔 열심과 뒷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라와 지역을 위해 '머슴 노릇'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머슴답게 어깨에 힘주지 말고, 카메라 의식하지 않고, 몸을 겸허히 낮추어 초심대로만 한다면 '분열의 사회'를 '통합의 사회'로 바꾸고, 서민 살림살이도 알뜰히 챙길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당부한다면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방안을 19대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했으면 싶다. 초장부터 고춧가루 뿌리자는 심보에서가 아니라 솔직히 국민이 보기에 지금의 국회의원 수는 너무 많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인구 16만 명당 한 명꼴로 인구 60만 명에 의원 한 명꼴인 미국과 26만 명당 한 명인 일본에 비해 훨씬 많다. 영화 '300'은 능력과 지혜가 있다면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의원들이라면 적은 인원으로도 나라 살림을 훌륭히 꾸려갈 능력이 충분하다. 작은 정부와 작은 국회, 우리의 정치 수준을 높이고 국민들이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길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작은 것일수록 예쁘다. 더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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