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찬]업구렁이 - 풍요로운 가정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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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찬]업구렁이 - 풍요로운 가정의 표상

[우리문화를 아시나요]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 승인 2012-04-10 14:28
  • 신문게재 2012-04-11 21면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자연은 언제나 사람과 함께 한다. 아무리 생채기를 당해도 어머니처럼 모두 품어낸다. 자연 속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된다. 벌과 나비, 쥐와 뱀 모두가 얽히고 설켜서 산다. 좋건 나쁘건 사람들도 이들과 함께 어울린다. 그런 가운데 짐승이면 짐승, 곤충이면 곤충에 나름대로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움직임과 특성 하나하나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간다. 같이 살아가기 위한, 배려하는 삶의 바탕이 된다. 특정한 짐승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업구렁이나 업두꺼비가 바로 그런 것이다.

업은 어떤 특정한 짐승이나 사람의 덕이나 복으로 한 집안의 살림이 늘어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식구 중에 자식이 태어나거나 집안에 새로 들어온 뒤에 살림이 늘어나면 “우리 복덩이”라 하곤 하였다. “구렁이”하면 징그럽거나 음흉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업구렁이는 한 집안의 살림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구렁이는 뱀 가운데서도 크고 탐스럽게 생겼으며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부와 풍요를 상징하기에 충분하였다. 어떤 집의 살림이 불어나서 부자가 되었는데 쌀독에 업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거나 이사를 갈 때는 반드시 업구렁이를 쌀독에 담아가지고 가야한다거나 어느 날 구렁이가 집에서 나가거나 대들보를 감고 있더니 그 집에 우환이나 초상이 나는 등 나쁜 일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집안이 점차 쇠락해 갔다고 하는 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이 듣던 이야기들이었다.

농경사회에서 부의 상징은 역시 벼와 쌀이었다. 집집마다 집안에 곳간이나 뒤주, 쌀독 등이 있었고 부엌에서는 땔감으로 볏짚을 썼기 때문에 볏짚 사이사이에는 수확할 때 떨어져 있는 벼이삭이나 낱알들이 섞여있어서 작은 짐승들의 먹잇감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을 먹잇감으로 하는 짐승가운데서도 특히 쥐들이 많이 서식하였다. 아마도 이 쥐들을 가장 좋은 먹잇감으로 했던 것이 구렁이였을 것이다. 살림이 불어나는 집에는 곳간이나 뒤주에 먹을 것이 많아서 쥐가 꼬이게 되고 쥐가 번성하면 쥐를 먹잇감으로 하는 구렁이도 집안에 자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 집안 살림이 쇠락해가는 집은 아무래도 곳간이나 뒤주, 볏짚땔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쥐들이 살 수가 없었고 쥐를 먹잇감으로 했던 구렁이도 그 집을 떠나 쥐들이 많이 사는 집으로 옮겨 갔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정형화되면서 우리 선조들은 구렁이가 집안의 살림을 일궈주는 “업”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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