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대전의 근대문화유산이 계속 사라지는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철도국장 관사였던 대흥동 뾰족집처럼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돼도 크게 달라질 것 없다. 목조 팔작기와집인 대사동 별당도, 옛 우남도서관인 시립연정국악원 등도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관계기관의 외면, 문화재 정책의 무원칙이 빚은 합작품이라 할 만하다. 문화재 정책의 근본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이런 식으로 지난해 기준 7년 간 대전의 근대건축물 27건 이상이 우리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개화기 이후 1960년대까지의 근대문화유산 886건 중 710건이 그렇게 사라졌다면 보존 실태를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뾰족집의 경우 원형 복원을 위한 실측 등 최소한의 절차마저 당연한 듯 생략됐다. 말로만 근대문화유산이지 주택재개발 사업을 위해 허물어도 괜찮은 부동산이 돼버린 것이다.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유명해진 군산의 경우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증거하면서 일제청산 분위기에 철거됐던 건물들까지 재현해 역사 현장으로 만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 많은 총선 후보자의 공약 중에도 이를 지키겠다는 것은 없다. 지역에서도 민ㆍ관 합동으로 문화유산보존위원회를 만들고 조례 제정을 서두를 때다. 지자체가 돈이 없어 나서지 못한다는 대답은 너무 궁색하다.
역사의 뒤편으로 급속히 사라지는 것은 역사만이 아닌 우리 삶의 흔적이며 대전의 뿌리다. 회덕역, 인동보건소 건물, 삼화연와 공장 등도 개발 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속수무책이었다. 왜 재개발만 생각하고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방안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문화재적 가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유주가 원하면 뚝딱 등록말소 처리하면 그만인가.
지역 문화유산이 법의 보호 밖에서 사라져 아파트와 공원이 되는 현실을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만이 문화유산이 아니다. 근대사 아카이브 사업도 중요하지만 살아 있는 문화유산의 어이없는 멸실부터 막아야 한다. 사료적 가치 있는 유산들이 청산 대상, 철거 대상이며 말소 대상이라면 지자체와 문화재당국의 관리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대전의 문화유산 훼손은 여기서 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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