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효순 미술학박사 |
1929년 경제 대공황기를 맞은 미국은 미술보다는 경제가 우선시되는 상황이었고 이름없던 예술가들이 이미 빈곤상태가 되어 배급을 타 먹으며 연명해야 할 처지를 맞고 있었다.
미국정부는 1933년부터 연합미술기획을 만들어 4000명의 화가들에게 작품제작을 의뢰하며 실업수당을 대체하던 상황에서 1935년, 프랑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가장 빈곤한 예술가들에 대한 정부의 보조정책을 발표하여 예술적인 빈곤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당시 작가들에게 매월 정기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공공사업국 관할의 작업기획원 WPA(Works Projects Administration)는 예술가들에게 보조금을 지불하며 공식적인 주문을 의뢰했는데 작가들은 대부분 자신의 작업을 해가며 공공건물의 벽화나 장식물들을 설치하는 작업들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 사업으로 인해 미국전역의 관공서 건물에는 벽화가 만개하게 되었으며 로드만 로빈슨이 그린 워싱턴의 법무부 벽화나 체신부 벽화 등이 그 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각 주의 예술가 원조정책으로 파생되어 지방작가들을 키우는데도 기여하게 되었고 뉴욕은 참혹한 시대에 오히려 자유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어 세계의 화가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저항없이 받아들여 세계미술시장의 흐름을 뉴욕으로 집중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들이 원조를 받아가며 제작한 작품 수는 수만 점에 달했고 수 천명에 이르는 작가들이 그 혜택을 받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잭슨폴록도 1943년까지 이 보조금을 받아가며 작업과 강의를 병행하였던 화가로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왔으며, 이 WPA는 결과적으로 미국미술로 인한 경제 활성화에도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21세기 복지사회실현을 강조하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순수직업화가들 중에 작품을 판매하여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는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복지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순수 예술가들임은 분명하다. 공공미술프로젝트의 경우도 눈치빠른 집단들이 주도하여 서류상의 조건을 잘 갖추지만 화가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어둡기도하고 개인이 나서기에는 제약도 많고 절차도 복잡해 마음으로만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자신의 작품에 시간을 투자할 수가 없어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여 예술가에 대한 복지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문화 예술은 물과 햇빛, 공기처럼 크게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삶의 모습이 윤택해지게 마련이다. 예술인이 그런 이유로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같은 앞선 의식을 가진 대통령이나 지자체장을 만나고 싶다.
오늘의 지원이 단순소비재가 되지 않도록 원조정책을 미래 자원의 양산으로 바꿀 수 있는 정책이 실현된다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과 화가는 배출되리라고 본다. 그것은 미래에 지역이나 국가의 재원으로 커 갈 수 있는 좋은 인적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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