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주영 문화부장 |
황무지는 1922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황폐한 모습을 상징적인 소재와 구성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이 해주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 마른 뿌리로 작은 생명을 길러 주었다(이하 생략).”
그런데 새싹이 돋으며 활기가 넘치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는지 설명을 해 보라면 많은 이들은 당황한다.
시(詩)는 음미하는 것이지 굳이 해석이 필요하겠느냐 하면서 말이다.
일반적 해석은 생명력이 가득한 계절에 매일 매일 똑 같은 생활을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경고성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무언가 해야만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나 선뜻 마음과 몸이 움직여지지 않음이 '잔인'한 것으로 읽힌다.
닫혀 있던 심신을 활짝 열어 제치고 생동감 넘치는 4월 들판으로 뛰어나가야 하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함을 한탄하는 서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 하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4월의 잔인함'에 동의를 보내고 엘리엇의 표현에 공감을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잔인한 달은 4월만이 아니다.
살다보면 1년 열두달 항상 있어 더 씁쓸하다. 학교에선 폭력이 넘실거리고 '왕따', '은따'가 된 우리 아이들의 마음 고생은 상상 그 이상이다. 학교 교사인 엄마가 학교에서 생활지도를 하고 있던 순간, 자신의 아들이 학교 폭력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지난 1월 대전의 한 여고생은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죄책감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 오클랜드시 오이코스대학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우리를 망연자실케 하고 있다. 2007년4월 버지니아텍(공대)에서 무려 32명을 사살해 전세계를 경악시켰던 조승희 사건에 이어 이번 사건 용의자 고수남(43)은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외신은 두 사건의 공통점을 이민 부적응 내지 왕따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외 학교 안팎에서 터져 나오는 극단적 폭력에 우리 사회는 다시 크게 술렁이는 모습이다.
민간인 사찰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제도권의 폭력'이다. 공직자라면 직무 감찰이라 해 용인될 수 있지만,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해서 공권력이 흥신소 내지 심부름센터 역할을 했다 하니 정말로 '황무지 정권'이란 욕을 먹어도 싸다. 현정권이나 전 정권 모두 동향 파악이라는 미명 아래 정치인에서 부터 연예인, 정권을 비판하는 네티즌 까지 뒤를 밟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공자에 얽힌 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누군가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정치란 바르게 행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위정자가 바르게 행하는데 어느 국민이 감히 부정을 행하겠느냐”고 한 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자기 스스로 사찰해야지 왜 국민들을 사찰하는가”라고 일갈했다.
공자는 정치가 뭐냐는 제자의 질문에 대해 첫째, 백성을 먹일 양식을 생산하는 것. 둘째, 나라를 지킬 군비를 갖추게 하는 것. 셋째, 백성들을 믿게하는 것이라 했다.
제자가 그럼, 그 중 하나를 제외한다면 무엇이 우선하냐고 하자 공자는 “ 먼저 군대를 없앤다” 했고, 또 다른 하나를 제외한다면 백성을 먹일 양식을 제외한다 했다.
백성을 믿게 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절대 존재할 수가 없으므로 양식이 우선 제외된다고 했다.
공자가 2500년 전에도 알고 있었던 것을 2012년 4월 우리는 정말 모르는 걸까?
다같이 '믿음과 소통'에 기초를 둔 생활 정치를 통해 회사, 가정, 학교에서 신뢰의 소중함을 배워보자. 정치는 '착한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11일 치러지는 19대 총선거에 반드시 참여해 우리 주변의 온갖 '잔인함'을 바로 잡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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