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은 이처럼 귀한 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서 겨울에는 풀이 말라서 지금처럼 소, 염소, 양, 토끼 같은 초식동물들을 기를 수 없었기 때문에 곡물이나 남은 음식으로 기를 수 있는 닭이나 돼지, 개 등을 주로 길렀다. 그 가운데서도 손쉽게 기를 수 있는 것이 닭이었다. 닭은 고기뿐만 아니라 달걀을 얻을 수 있었고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 집집마다 닭을 놓아기르기도 했지만 이웃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닭장을 만들어서 길렀다. 그런데 이 닭장 안에는 닭들이 날아올라 앉을 수 있는 횃대와 닭둥우리가 있었다. 닭둥우리는 초가지붕 마루에 올리는 용마루처럼 짧게 엮어 오므려서 만들었다. 이 닭둥우리는 닭이 달걀을 낳는 곳이었고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곳이기도 했다. 암탉이 커서 달걀을 낳을 때가 되면 이 둥우리에 다른 달걀을 넣어 놓는데, 이 달걀을 '밑알'이라 했다. 여기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학비를 밑알에 비유해 '밑알 넣는 일'이라 하기도 하고 '밑알을 잘 넣어야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말들이 생겨났다. 이 닭둥우리에 하루에 하나씩 낳는 달걀을 모아서 짚으로 달걀꾸러미를 만들고 달걀을 열 개씩 넣어 꾸렸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달걀 한 줄을 열 개라고 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달걀꾸러미를 시장에 내다 팔아 살림 밑천으로 삼기도 했고 소중한 가정행사나 소중한 날에 귀히 아껴 쓰곤 했다.
오늘 한번 쯤 소풍갈 때나 기차 여행 때 삶은 달걀에 소금을 얹어 먹던 옛 추억에 잠겨보자.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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