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재권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장 |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8% 이상의 고실업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유럽은 그리스 재정위기로 어수선한 가운데 독일까지 어려워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일본도 대지진 이후 원자력발전 억제 및 화력발전 확대로 석유수입이 급증하면서 그동안의 경상수지 흑자가 적자로 전환되었다. 중국도 그간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8% 성장목표를 7.5%로 하향 조정했고 올해 들어서는 상당 규모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총선을 앞두고 언론보도에 정치 뉴스가 많아 경제 이슈가 다소 소홀히 다뤄지고 있지만, 우리 경제도 전반적으로 어렵다. 무역수지가 1월 적자에서 2월 흑자로 전환되었지만 앞으로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렵고, 가계부채 문제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우리사회의 중산층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를 자제하고 저축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최근 50대의 창업이 늘고 있는 데, 예전 같으면 정년을 기다리면서 중년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나이인데 세상이 바뀌어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직장에서 나와 관망하다가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벼랑 끝 심정으로 창업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화이트칼라로 살아온 사람들이 아파트 경비, 대형마트 캐셔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등 평생 지켜온 자존심을 내려놓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질 기미를 안 보이는 세계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올바른 정책처방은 도대체 있기는 하는 걸까? 누구의 머릿속에 있는 것인가? 누구의 손을 거쳐 나타날까?
이와 같은 경제상황에 해법을 제시해야 할 거시경제 학계는 버냉키를 중심으로 한 정책대응 방식을 숨죽이고 지켜보는 형국이다. 비판적인 의견이 간혹 나오기도 하나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다. 올해 들어 ECB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유사한 공격적인 정책을 구사하고 있으며, 일본은행도 뒤늦게 따라가고 있다. 우리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 또한 정책의 기본 틀을 국제적 흐름과 같이 가는 정합성을 유지해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대공황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케인스다. 그는 살아있을 때에도 유명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선 생각과 정책 처방을 수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1936년에 출간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다. 전 세계에 만연한 대규모 실업사태에 대한 정확한 처방과 함께 매우 독창적인 대안을 제시해 현대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제사에서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면, 케인스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배상금 문제를 논했던 베르사유 회의에 차석대표로 참석했다. 유럽의 주요 정치지도자들이 자국민들의 정치적 복수심에 영합하는 연설에 실망하고는 사임한 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무리한 징벌적 배상금 요구는 패전국을 혼란과 파시즘으로 내 몰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독일이 극심한 사회혼란 끝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럽 전역을 다시 전쟁터로 내몰면서, 케인스가 시대흐름을 일찍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대공황 연구를 평생 업적으로 해 미연준 의장직까지 오른 버냉키의 재임기간이 2014년 초가 되면 끝난다. 미연준은 2014년말까지 제로금리 정책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경쟁적으로 통화량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인플레 압력이 만만찮은 가운데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고 갈 곳 잃은 단기성 국제투자자금들이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는 우리 경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오랫동안 현장에서 거시경제 운용에 대해 고심해 온 필자로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케인스 같은 슈퍼스타가 마냥 그립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