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수준급이다. 웃음과 함께 감동도 주어야 한다는 한국코미디 특유의 강박도 없고, 단타로 치고 빠지는 웃음은 뒷맛이 개운하다. 약간 복잡하지만 미묘한 플롯도 흥미롭다.
시체를 둘러싸고 기묘한 쫓고 쫓기기가 시작된 배경은 이렇다. 첨단과학기술이 담긴 칩을 자신의 몸에 숨겨 출국하려던 김택수 회장이 급성 심장마비로 숨진다. 그는 기술을 빼내기 위해 연구원들을 모두 해고한 악덕 경영자다. 연구에 모든 걸 걸었던 연구원 진수와 현철은 그의 출국을 방해하는데, 진수는 의문의 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진수의 딸 동화와 현철은 김 회장의 시체를 훔쳐 몸값을 요구하려 한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던 현철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인물의 등장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튄다. 훔친 시체는 사채업자를 피하려 시체 행세를 한 진오였고, 진오의 등장으로 상황은 뒤죽박죽이 된다. 시체를 훔쳐 몸값을 받아 내려는 현철과 동화, 진오. 칩을 손에 넣으려 현철 일행을 쫓는 '검은 머리 외국인' 스티브 정, 스티브 정을 쫓는 국정원 요원, 그리고 진오를 쫓는 사채업자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해프닝이 영화를 힘차게 끌고 간다.
복잡한 구성이지만 무얼 찾고자 하는지 각자 목적이 뚜렷한 만큼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쉽게 '관'을 따라가면 된다. 신예 우선호 감독은 인물들이 제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교통정리를 하는데 비범한 솜씨를 보인다. 미장센영화제에서 '정말 큰 내 마이크'로 희극지왕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재기가 곳곳에서 번뜩인다.
결과를 던진 뒤, 관객에게 자세한 과정을 되짚는 역구성은 보는 재미를 한껏 높이고, 장면마다 소소한 재미로 빼곡히 채우고, 넘치지 않도록 다듬어낸 솜씨는 수준급이다.
“생각 좀 하고 덤벼. 이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치밀한 브레인 현철(이범수), “막상 저지르려니까 겁나지? 나 혼자 해치워버릴 거야!” 뼛속까지 '다크'한 적극 행동파 동화(김옥빈), 천부적인 사기본능 진오(류승범) 등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은 초장부터 눈길을 붙잡는다. 특유의 입담을 더해 강물에 뛰어들고 마취제에 취해 휘청거리는 류승범은 '똘기 충만' 연기로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한다.
핑크색 머리에 고딕 풍 패션으로 나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김옥빈의 연기는 '적당'하고, 조금 밋밋한 이범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정만식 고창석 오정세 유다인 등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조연진이 영화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힘들여 기업을 지켜온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해고해버리는 기업의 행태, 해고로 고통 받는 노동자, 돈을 위해서라면 산업 기밀도 팔아넘기는 경영자, 대출을 빌미로 장기 적출까지 일삼는 사채업자 등은 신문 사회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니까 사기를 치려는 캐릭터는 악당이 아니라 늘 당하고 고통 받는 소시민들이다. 그런 소시민들이 '나만 살면 된다'는 이들을 상대로 펼치는 사기극이라는 점에서 통쾌하면서, 맘껏 웃다가도 한편 씁쓸하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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