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연희 인터넷방송국 취재팀장 |
필자는 1주일 전 본보 인터넷 판에 '권선택, 제2오세훈 되려는가'라는 칼럼을 썼다. 권 후보의 도청철거 공약은 등록문화재의 개념자체를 모르고 한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의 논리대로라면 등록문화재 1호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500개에 달하는 등록문화재를 '일제잔재 등록문화재 철거법'이라도 만들어 청산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권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당선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그의 공약이 어떻게든 실현될지 '공약(空約)'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전시 정무부시장과 행정부시장을 지냈으며 중구에서 두 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한 권 후보가 근대도시 대전의 존재와 문화재를 폄하하는 공약을 내놨다는 사실은 적잖이 실망스럽다.
그의 주장대로 1932년 준공된 충남도청사는 부지선정은 물론 설계도 총독부 건축과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침략기 지어졌기 때문에 건물 내외부에 일본 상징문양들도 많다. 2002년 등록문화재 지정당시에도 문양에 관한 논란이 분분했지만 그 시대 건축기법이며 잘 보존된 근대건축물이어서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의 중앙청사로 사용됐던 역사적 장소성도 도청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권 의원 공약의 실현가능성에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진 않겠다. 그러나 도청철거 논의에 앞서 대전이란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대전시사에 따르면 대전은 경부선(1904)과 호남선의 개통(1914)에 따라 기존 회덕군과 진잠군, 공주에 속한 일부지역을 통합한 식민지 신도시인 대전면(1914)에서 출발했다.
이후 대전은 교통의 요지로서 중부권 경제수탈의 거점이자 일본거류민이 실권을 장악한 식민지 신도시로 급성장해 충남도청 이전지로 부각된 것이다. 이 내용은 권 의원이 도청철거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들고 나온 서울대 김민수 교수의 '충남도청사 본관 문양 도안의 상징성 연구(2009)' 논문에도 그대로 나온다.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등록문화재 19호)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자본으로 운영됐던 곳이고 옛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등록문화재 98호)도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수탈기관이었다. 2010년 중구 대흥동 재개발과정에서 무단 훼손된 뾰족집(등록문화재 377호)은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국장 관사였다.
충남이 국보, 보물, 사적 등 국가지정문화재와 시ㆍ도지정문화재 등 1211건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충북도 810건의 문화재가 있는 것에 비하면 대전은 181건에 불과하다. 더구나 나라의 보물이라는 국보는 한 건도 없다. 대부분이 시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로 17건의 등록문화재 거의가 일제 강점기에 제작되거나 건립된 것들이다.
도청사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달라고 문화재청에 요청한 건 충남도가 아니라 대전시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건물 증개축이 쉽지 않아 꺼리는 충남도를 대전시가 설득했다고 한다. 이런 시가 근대도시 대전의 역사를 부정하는 인식에서 출발한 도청사 철거 논란에 뒷짐 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만 후보의 공약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 자체가 행정력 낭비라는 시의 대답을 믿어보겠다.
필자는 요즘 대전ㆍ충남지역 총선 후보자들을 영상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후보들에게 빼놓지 않는 질문이 공약인데 이 가운데는 웃음이 터질 만큼 황당한 것들도 많다. 선거기간이어서 공개하긴 어렵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들이 허다하다. 권 후보의 도청철거 공약이 중구 구민들에게 획기적인 원도심 활성화 공약으로 먹힐 지, 황당무계한 헛공약으로 인식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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