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 두리한의원장 |
냉이는 뿌리째 먹는 게 좋은데 허약한 사람과 빈혈이 있는 사람에게 좋다. 미나리는 갈증을 없애고 주독을 풀어주며 독특한 풍미로 국물 맛을 근사하게 만들어준다. 곰이 먹으면 사람이 되는 쑥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의 폐허에서 가장 먼저 싹을 틔운 식물이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여성 질환에 좋으며 오장육부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 그뿐이랴, 두릅은 칼로리는 낮은 대신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섬유소까지 많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그만이다. 그 밖에도 머위며 달래며 돌나물에 씀바귀, 취나물과 곰취에 봄동까지 봄이 되면 우리 산야는 온갖 봄나물들로 그득하다. 봄나물의 약간 쓴맛은 몸의 열을 내려주고 미각을 되살려주니 마땅히 봄나물 한 접시를 끼니마다 비울 일이다.
십여 년 전에 국토종단을 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이십 일을 걸었다. 때는 삼월 하순. 하지만, 국토의 남단임에도 바람은 매웠고 일상에 파묻혔던 내 걸음은 더뎠다. 대파가 파랗게 올라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꼭 보리밭 같았다. 낮에는 제법 온도가 올라 엉겁결에 고개를 내민 새싹들이 아침저녁으론 추워, 추워 하면서 봄바람에 떨고 있었다. 꽃샘추위란 말이 몸으로 다가왔다. 어렵사리 새순을 내민 온갖 것들을, 네까짓 게 봄꽃이라고? 흥, 봄나물이라고? 이 정도 바람도 견디지 못할 거라면 꽃 피우는 건 아예 엄두도 내지 말라구! 하면서 하늘에서 땅까지 바람이 불었다. 그 서슬을 보면서 나는 종종걸음을 쳤던가, 빙긋 웃기도 했던가. 세월이 무심히 흘러 기억은 어슴어슴하다. 봄나물조차도 거저 자라는 게 아니구나. 이 바람 온통 맞아야 겨우 한 뼘 크는구나, 그 때서야 알았다.
인도에 현철한 왕이 있었단다. 전국의 현자 학자들을 모셔놓고, “세상의 진리를 책으로 적으시오” 했다던가? 십 년이 지나서 책이 완성됐다. 엄청나게 큰 방에 저마다 진리를 담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왕이 힐끗 쳐다보더니, “저 책들의 내용을 한 줄로 줄이시오” 하더란다. 죽어라고 줄이고 줄이기를 다시 십 년이 지났다. 세상의 현자 석학이 모여서 한 줄로 압축한 진리는, “세상엔 공짜가 없다”란다.
그렇다. 세상엔 과연 공짜가 없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노력과 통고(痛苦) 끝에 나온 것이다. 민주주의 또한 그러하다. 지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이 쌓이고 모여 겨우 얻은 것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끝 모를 후퇴와 퇴보 끝에 이제는 국토의 남쪽 끝 제주 강정마을 바닷가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이 땅에 민주주의 꽃 피우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새봄처럼 때 되면 순탄히 올 줄로만 알았더니, 모진 꽃샘추위가 그렇게 숨어 있었던가.
점 하나로 뜻이 달라지는 말 중 대표는 '님'과 '남'일 것이지만, '흐트러지다'와 '흐드러지다'도 못지않다. '흐트러지다'는 여러 가닥이 이리저리 엉키고 들쑥날쑥하며 단정하지 못한 상태를 말하지만, '흐드러지다'는 (꽃이) 만발하여 매우 탐스럽고, (웃음소리 등이) 매우 흐뭇하고 넉넉한 상태를 말한다.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이젠 봄이다. 이 봄, 이제 곧 온 산하가 초록빛으로 울울할 것이며 향기로운 풀들과 꽃들이 만개하리라. 그리고 오늘부터 꼭 이주일 뒤에는 총선이다. 사년 간 흐트러져 본 모습이 그리운 민주주의도 봄기운 따라 소생할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흐드러지리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