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찬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 |
양당체제가 굳건하게 구축된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 중도우파를 지향하는 민주당(Democrat Party, 1828년 창당)과 보수주의 중도우파를 지향하는 공화당(Republican Party, 1854년 창당) 두 개의 정당이 이름을 바꿔달지 않고 수백 년 동안 존속하고 있다. 영국이나 일본의 정당들도 이름을 바꾸지 않고 오래 존속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정당의 평균수명은 일 년이 안 될 정도로 짧다. 정당명이 총재가 바뀔 때마다 바뀐다.
한국에서는 왜 이리 정당명이 자주 바뀌는가.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왕조가 탄생할 때 이전 왕조와 차별화하기 위해 국명을 바꾸듯이 새로운 정당의 지도자가 등장할 때 이전 지도자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즉,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고려왕조와 차별화하기 위해 국명을 바꾼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이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품질이 완전히 다른 차별화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가 어려울 때 단순히 상품의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제품이라고 광고를 함으로써 소비자가 기존 제품과는 다른 상품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기업은 품질과 내용이 다른 새로운 상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하고, 시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반응을 보고,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 때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구축하고 시장에 신상품을 내놓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최소한 반년 이상의 긴 세월이 소요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은 짧은 시간에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자 내용과 품질은 차이가 별로 없는 데, 이름과 포장만 바꾼 후 새로운 제품이라고 시장에 등장시킨 후 기존 제품과 다른 제품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주기 위해 막대한 광고를 하는 차별화 전략을 쓰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차별화를 진짜 차별화와 구별하기 위해 '가짜제품차별화(Spurious Product Differentiation)'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의 정당들도 이름만 자주 바뀌었을 뿐이지 중도 보수를 지향하는 정당과 중도 진보를 지향하는 두 그룹의 정당이 존속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보수를 지향하는 정당으로 대한국민당(1949), 자유당(1951), 민주공화당(1963년), 민주정의당(1981), 신민주공화당(1987), 민주자유당(1990), 통일국민당(1992), 자유민주연합(1995), 신한국당(1995), 국민신당(1997), 한나라당(1997) 그리고 이번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위해 가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새누리당을 들 수 있다.
진보를 지향하는 민주당계 정당으로는 고려민주당(1945), 조선민족당(1945), 한국민주당(1945), 민주국민당(1949), 민주당(1955), 통일당(1957), 신민당(1960), 민정당(1963), 자유민주당(1963), 국민의 당(1963), 민중당(1965), 신한당(1966), 신민당(1967), 국민당(1971), 신한민주당(1985년), 통일민주당(1987년), 평화민주당(1987년), 민주당(1990), 신민주연합당(1991년), 민주당(1991), 새정치국민회의(1995), 통합민주당(1995), 새천년민주당(2000), 열린우리당(2005) 그리고 민주당으로 돌아갔다가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신장개업해 가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당의 정책과 인물은 바꾸지 않고 당명만 바꾸는 가짜차별화를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같은 당의 명맥을 이어가는 정당으로서 과거 국정운영의 실패가 있다면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단순히 이름만 바꾸고 우리는 다른 당이라고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물을 과감히 바꾸고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정책을 내 놓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총선을 위해 출범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진짜차별화를 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실망스럽다. 한국의 정당은 이제는 이름만 바꾸는 가짜차별화가 아닌 인물과 정책을 과감히 바꾸는 진짜차별화를 해야할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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