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차 승객 평균 대비 터무니없이 적은 방독면 숫자보다 더 시급한 사안은 따로 있다. 지하철 역사의 방독면이 모두 전시에나 쓰이는 화생방용이라는 것이다. 내구 연한을 넘긴 화재용은 전면 폐기된 상태라 한다. 만약 방독면 비치가 시민에게 심리적 위안 효과나 줄 뿐이라면 안전성과 실효성은 따질 계제가 아니라고 본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방독면을 비치했다고 보면 그 목적은 당연히 화재용이어야 한다. 그 이전에 9년이 지나도록 명확하고 일관된 지침이나 예산이 없으니 전국 지하철의 방독면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대구와 인천 등의 지하철 역사에 마련된 화재용 방독면도 사실은 믿기 힘들다. 막상 불이 나면 15분을 못 버텨 '함량 미달'이라는 분석이 나온 지 오래다.
화재용과 화생방용을 별도 비치하거나 혼합형을 비치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긴급한 상황에서 두 가지를 구분하거나 정화통을 갈아끼워 5분 안에 안전지대로 대피해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을지를 헤아려보면 더욱 답답하다. 지하철 화재에서 착용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제대로 못 걸러내고 질식 우려가 있다는 견해 또한 만만찮다.
이 때문에 지하철 화재 발생 때는 젖은 수건이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까지 이미 나와 있다. 보관함을 찾아 방독면을 착용할 시간이면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대피하는 편이 신속하고 안전하다는 지적이 꽤 신빙성 있게 들리는 이유다. 비치된 방독면의 방제 기능이 취약하다는 주장은 보다 철저한 검증이 따라야 할 부분이다.
지금처럼 제품의 성능이 불확실하고 한낱 전시용, 장식용 사업이라면 전면 폐기하는 쪽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그보다 지하철 상황에 맞는 제품인지부터 검증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다음에 방독면 비치 기준, 기능에 맞는 지침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방독면만이 아니라, 지하철역 화재에 대비한 전반적인 제도와 정책 보완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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