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길]국립대 총장들의 비겁함과 무책임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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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국립대 총장들의 비겁함과 무책임을 고발한다

[논단]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2-03-15 14:30
  • 신문게재 2012-03-16 20면
  •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전국의 국립대학들이 '국립대 선진화방안'에 밀려 총장직선제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대학민주화의 상징인 총장직선제가 도입된 지 2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전국의 교원대학이 직선제 폐지를 결정했고, 작년에 구조개혁 중점추진대학으로 선정되었던 충북대와 강원대가 이를 수용했다. 우리 지역에서는 공주대가 지난 주 투표를 통해 폐지를 결정했으나 찬성 교수는 유권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충남대도 논의 중이나 교수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대학의 자존심은 찾아볼 수 없고 정부의 일방적 협박과 이에 굴종하는 대학의 초라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먼저 총장직선제 폐지가 어떻게 국립대학을 선진화시키는 방안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국립대학이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것이 대학의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출하는 전국의 사립대학들이 선진화된 대학이고, 끝없는 갈등과 내홍에 시달리고 있는 KAIST 사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방의 국립대학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선제가 문제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운영의 문제다. 어떤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으며 운영과정에서 어느 정도 부작용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오히려 소수의 선거인단이 총장을 뽑는 간선제나 공모제는 선거과정의 불공정성과 불법성이 증폭될 소지가 많다. 학연과 지연이 끼어들고, 선거인단을 돈으로 매수하는 행위가 이루어 질 수 있다. 총장추천위원회 구성에 정부가 개입해 대학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되고, 대학 운영이 정부의 직접적 통제 하에 놓이게 된다. 직선제 폐해는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지불하는 비용이고,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많은 적폐가 있음에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자치단체장 선거에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현재의 국립대 총장들은 직선을 통해 선출되었으며, 이들은 두 가지 의무를 갖는다. 하나는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대학을 발전시켜야 하는 대내적 책무이고, 또 하나는 부당한 외부 압력에 저항해 대학의 자율성을 지켜내야 하는 대외적 책무다. 탄생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말살하려는 정부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국립대학 총장들은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는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총장은 임명직 총장과는 다른 행동을 보여야 한다. 전국의 국립대학 총장들이 이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저항했다면 이러한 참담한 사태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정부의 재정지원 박탈과 입학정원 감축 등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대학 총장의 권위는 사라지고 교과부에 조종당하고 있는 꼭두각시 모습만 보일 뿐이다.

구성원들의 투표를 통해 직선제 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 역시 일종의 꼼수다. 투표는 자유롭고 공정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져야 결과의 정당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총장선출제도를 논의하고 개선하는 것이라면 좋다. 그러나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직선제 폐지에 대한 투표는 칼을 들이댄 상태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원천무효다.

대학선진화와 직선제 폐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대학을 통제하기 위한 정부의 술책이며 법인화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총장직선제는 우리 선배들이 고귀한 희생과 뜨거운 피를 흘려 쟁취한 대학민주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이를 잘 지켜내야 할 역사적 소명과 책임이 있다. 이처럼 허망하게 구차한 협박에 밀려 대의를 저버릴 수 없다.

국가를 이롭게 할 방도를 알려달라는 양혜왕에게 어찌 의(義)를 말하지 않고 이(利)를 말하느냐고 한 맹자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물며 큰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大學)'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자유와 정의가 실종된 대학은 이미 대학이 아니다. 정부의 부당한 요구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눈치나 보며 알아서 정부정책에 순응하는 국립대 총장들의 비겁함과 무책임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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