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궁리 끝에 투자 시작. 그러나 한 달도 채 안돼 원금을 까먹는다. 그걸 반복한다. 그런 과정에서 이제는 벌지 못하는 나이임을 깨닫는다. 쓰기를 잘 해야 함을 알게 된다. 나가는 돈의 대부분이 타인을 위한 지출이었다. 기부금이라든가 장학금이었다. 좋은 일 하는 모임에 대한 지원과 식대였다. 그러한 관성을 끊어 돈에 대한 수요를 줄이려 했다. 허나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돈이 뭔지 피까지 부른다. 날품팔이로 근근이 살아왔던 40대 형제는 홀어머니 모시며 효자소리 들었다. 우애 좋기로 동네에 소문도 자자했다. 며칠 전 어머니가 작고했고, 남루한 유품 속에서 예금통장을 발견한다. 잔액 93만원, 형은 이건 내 돈이라 했다. 반으로 나누어 갖자는 동생을 형은 두드려 팼다. 유혈이 낭자했다 한다.
한편으로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알 형제자매가 유산상속 소송을 냈다. 원고들은 1조원이 넘는 분배를 요구했다. 아버지가 차명으로 남긴 주식을 동생이 독식했다며 낸 소송이다. 날품팔이 형제와 재벌 형제자매라는 두 사회현상에서 자본주의 생태가 여실히 나타난다. 빈부격차, 그리고 없는 사람은 손에 피 묻히고, 있는 자는 사법제도를 이용하는 현실이다.
격차가 날로 커진다. 극소수 부자는 초 단위로 더 부자 된다. 돈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다수의 중산층은 시간과 더불어 무너져 내린다. 돌연한 해고에 추락한다. 빈자는 증가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그래서 시작됐다. 자본주의의 모국 영국에서부터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그 초점은 어디에 있는가. 빈부격차 확대라는 모순의 제거다. 영국은 어떤 나라인가. 5세기에 지배자 로마군 철수, 대륙의 문화와 기술의 전승이 끊겼다. 긴 암흑시대에 돌입, 도르래와 같은 간단한 도구조차 영국인 스스로 만들지 못했다.
조상의 묘를 건드렸다. 거기서 그릇을 파내 썼다. 농사와 목축을 위한 기구를 꺼내 사용했다. 이 정도였으니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었다. 개인주의가 철저하게 몸에 배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자연히 생존을 위해 연구하고 개발했다. 새로운 제도를 고안하고 실생활에 적용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는 영국과 영국인의 생을 위한 필사의 노력의 결과였다.
20년 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사임했다. 동시에 쇠망치와 낫이 그려진 붉은 기도 내려졌다. 소련 붕괴,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선언됐다. 이게 웬 일인가. 세상은 달리 돌아갔다. 승승장구 자본주의가 병들어 버렸다. 물건을 만들고 팔아 돈 버는 시대를 뒤로 한 지 오래다. 돈 놓고 돈 먹기로 치부한다. 금융위기에도 월스트리트 돈벌이는 재미보고 있다.
배 불리는 건 일반대중이 아니다. 금융자본이다. 거기서 일하는 자들은 그들을 위해 일하고 구전 먹는 셈이다. 그렇기에 탐욕스런 가진 자 1%와 배고픈 빈손 99%로 대비되고 있다. 불가피하게 격차시정형(格差 是正型) 자본주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영국 총리, 보수당 당수는 대중이 참가하는 자본주의를 제시한다. 영국 노동당 당수는 책임 있는 자본주의를 제창한다.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사회를 지향한다. 공산주의로의 회귀는 아니다. 그러나 좌익 또는 우익이라는 말은 서구정치에서 이미 고어(古語)가 되었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탐구 중이다.
내 몫도 있다. 자본주의는 자선ㆍ기부의 발전과 같은 길 걸었다. 기부기금 마련을 위해 주간투자를 계속하려고 한다. 무엇에 투자할까? 이메일(kimjoongkyoum@hanmail.net)로 답을 보내시라. 정답자 한 두 분께 가벼운 선물 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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