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가끔 낯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담배)불 좀 빌립시다” 라거나 “길 좀 물읍시다”라는 말을 듣는데 아주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존칭어의 하나인 '시'자만 붙였을 뿐,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닐뿐더러 한편으로는 강압적으로 들리더라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택시를 타도 “어디까지 가주세요”라고 하지 “어디까지 갑시다”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 만큼 '~시다'라는 말은 많이 쓰지 않지만, 당시에는 흔히 그렇게 썼고, 이런 현상이 필자에게는 못마땅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아무 것에나 '시'자만 붙이면 높임말이고 예의를 갖춘 것으로 알고 사용하는 잘못은 고쳐야 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언제부터인가 '~세요'라는 말이 서비스 분야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서면 종업원이 “계산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상냥하게 하는 말이라고 해서 설마 음식 값을 대신 내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런 어법이 과연 논리적으로 맞는 것인지는 헷갈려하면서 “얼마지요?”하고 물으면 “삼만 원 되세요”, “오만 원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식사 중에도 “새로 나온 봄나물이세요, 참 맛있으세요”라고 했던가?
듣기에 거북하다고 구태여 지적하면 까칠한 손님이 되고 말 것이니 '좋은 뜻으로 높여서 말하는 것인데 그냥 새겨들으면 되는 거지'하고 말게 된다.
옷가게에서도 흔히 “고객님, 신상품이세요.”, “이 제품은 요즘 유행하는 칼라세요”라는 말을 듣는데, '고객은 왕'으로서 대접을 받고 세련된 말투로 최상의 언어서비스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쩐지 듣기에 어색하다.
주체가 사람으로서 이 경우에도 높임의 대상일 때만 '~세(시)'를 써야 하는데 돈이나 물품에 경어를 붙이니 어쩌면 사람과 물품을 동격(同格)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마찬 가지다. “내과는 2층이세요”, “계단을 조심하여 내려 오실게요”하는 경우가 있다.
높임의 대상으로도, 어법으로도 맞지 않는 말을 쓰면서도 스스로는 최대한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버님 머리님에 검불님이 붙으셨네요.”
모든 것이 어렵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새색시가 시아버지 머리에 검불이 붙은 것을 보고 했다는 이 말은 오래전 잘못 사용하는 경어(敬語)의 대표적인 사례로 쓰여진 적이 있었다. 한참 손아래인 시동생에게도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처지에서 무엇이든 '님'자를 붙이면 다 높임말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했거나 무의식적으로 썼을 것이다.
다만 자연 현상에 '시'자를 쓴 경우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비가 오는 것'을 '비가 오신다'라고 의인화(擬人化)하여 쓰기도 했는데 이는 물이 농사를 좌우하는 농경시대에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대지를 적셔주는 비가 반갑고 고마워서 붙였던 말이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는 이런 잘못된 언어습관과 무의식적으로 남용하는 이상한 존댓말을 바로잡는 '굿바이~ 시옷(ㅅ)'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이 아닌 '상품'에까지 존칭을 쓰는 잘못된 어투를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아주 바람직한 일로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한 옷을 벗어내는 느낌이 든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했던가. 지나친 공손은 오히려 예의에 벗어난다고 하는 뜻이다. 하물며 물건이나 상품에까지 경어를 쓰는 현상에서 그런 부자연과 어색함을 털어낸다면 이제는 좀 홀가분해지겠다.
전통적인 질서가 희미해져가고 일상의 언어는 점점 혼탁해지는 세태에 잘못된 존칭어나마 쓰는 것은 그래도 '높임'의 자세를 갖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혹시 그런 경어나마 듣지 못한다면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사람은 '물품'과는 구별되는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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