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민주화 열망과 문화민주주의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준기]민주화 열망과 문화민주주의

[문화 초대석]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승인 2012-03-04 13:14
  • 신문게재 2012-03-05 20면
  •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2012년 한국사회의 화두는 뜻밖에도 민주화다. 스마트폰의 라디오방송(Podcast)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의제를 다루면서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이야기한다. 그 가운데 경제를 전문적으로 다뤄 대중의 눈과 귀를 모으는 방송도 있다. 이들은 경제의 민주화를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고, 관련 문제들을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특히 거대기업과 골목의 공존에 관한 얘기는 그 울림이 크다.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자본주의의 원칙에 충실하게 합리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시장경제란 공정한 경쟁체제를 통해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는 선순환구조에 기반을 둔다. 문제는 이 공정한 경쟁체제라는 것에 있다. 재벌이 떡볶이 장사까지 하느냐는 문제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일자 해당 기업이 한 발 뺀 일이 있었다. 대기업과 골목의 서민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무한경쟁의 상황에 놓일 때 결론은 보나 마나 대기업의 일방적인 독주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대자본의 욕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지금 한국에서는 경제 민주화가 첨단의 화두다.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공존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경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집약한다. 전지구적 차원의 대기업경제와 골목의 서민경제가 공존해야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전지구적 차원의 명망성과 골목의 자생적인 문화생산이 공존해야 건강한 문화생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문화의 민주화라는 말로 담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제민주주의와 문화민주주의는 결이 좀 다르다. 제도의 정착이라는 면에서 문화민주주의는 이미 이뤄진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전근대시기의 독점적인 문화 생산과 향유 시스템은 미술관과 공연장, 출판 등의 근대적 공공영역에 의해, 다시 말해서 문예적 공론장의 확장에 따라서 민주적인 소통 체제로 전환했다. 전지구적인 명망성을 가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동북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미술관제도의 정착에 따른 문화민주주의의 성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문화의 중심과 주변을 나누고 그 위계를 확대 재생산하는 양극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진행형이다. 동시대의 문제는 문화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낳은 문화의 양극화를 넘어서는 일이다.

정보의 민주화에 따른 변화에도 굴곡이 있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환경의 발달은 흩어져있는 다수를 하나의 덩어리(mass), 즉 대중으로 묶어 놓았다. 절대다수가 동시에 소통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개인의 창의성을 유린한 우민화(愚民化)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에 이르는 동시대의 정보통신 기술은 정보민주주의의 시대를 넘어 일반민주주의 자체를 재구성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매스의 일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개인으로 거듭나기는 백가쟁명하는 시대다.

정치적인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의 민주화, 나아가 정보의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시대다. 이 모든 일들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의 욕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문화 영역의 민주화 역시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한다. 전지구의 시민을 '매스'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어 두려는 거대한 힘이 작동하는 한 정치와 경제, 정보, 나아가 문화 영역의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민주화의 열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2012년의 대한민국. 선거를 통해서 정치권력을 재구성하는 문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우리를 한 걸음 더 성숙한 사회로 인도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