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정임 충남대 예술대학 음악과 부교수 |
지난 22일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에서 J. S. 바흐의 '마태수난곡' 공연이 있었다. 이 작품은 고전주의 양식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밀려 바로크 음악이 진부한 음악으로 치부되면서 100년여 정도를 역사 속에 파묻혀 있었던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재조명하게 한 곡이다.
이번 연주는 독일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이 맡았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멘델스존에 의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100년 만에 처음 세상에 알린 단체이고 성 토마스 합창단은 바흐가 1723년부터 1750년 서거할 때까지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이 작품을 초연하기도 했던 단체이므로 두 단체는 모두 이 작품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렇듯 '마태수난곡'의 해석에 있어서 권위자로 손꼽히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토마스 합창단의 이번 연주회는 한 마디로 연주자와 청중이 소통하는 연주회였다. 텍스트는 독일어였지만 한글자막을 참조하면서 전체적 흐름을 충분히 교감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복음사가 역을 맡은 테너 마르틴 페촐트(Martin Petzold)와 예수역을 맡은 베이스 마티아스 바이헤르트(Matthias Weichert)는 노래라기보다는 말에 가까운 선율로 이루어진 자신들의 부분을 자연스럽게 일상대화를 하듯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강조하는 부분과 서정적인 부분을 분명히 구분하여 청중이 작품에 몰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텍스트는 독일어였고 연주자는 독일인이었으므로 언어의 뉘앙스를 세세한 부분까지 잘 살려 연주할 수 있었다.
초·중·고 학생으로 구성된 합창단도 마찬가지였다. 성난 군중이 되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참회자의 역할을 하며 내면적 슬픔을 조용히 표현하기도 하여 각 부분의 역할과 분위기에 맞추어 적절하게 음악을 표현하였다. 오케스트라단도 악보에서 눈을 뗀 채 각각의 곡이 가진 감성에 맞는 내면적 표현을 보여주었으며, 개별적이 곡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농익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참 잘하는' 연주였다. 모든 연주자들이 너무 자신 있고, 너무 표현을 잘하고, 눈을 감고서도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연주였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토마스 합창단에게 있어서 '마태수난곡'은 트레이드마크 정도되는 레퍼토리일 것이다. 그들의 자존심이고, 자부심이며, 세계 그 어느 단체보다도 이 작품만큼은 자신들이 잘한다고 내세울 수 있는 그런 작품일 것이다. 그 정도 되니까 연주자들도, 청중들도 감상의 차원을 넘어 교감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로 눈을 돌려, 우리 음악계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 이렇게 세계 어디에다 내놓아도 자신 있는 레퍼토리가 될 수 있을지, 어떤 것이 자기의 것이기 때문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쏟아낼 수 있는 정도의 레퍼토리가 될 수 있을지 언뜻 떠오르질 않는다. 올해가 창립 800주년이라는 성 토마스 합창단의 오랜 전통이 부럽기도 하고, 특별히 한국음악 혹은 민족음악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문화상품으로서 잘 다듬어지고 우리의 자부심으로 팽배한 그런 레퍼토리에 대한 아쉬움이 간절하기도 한 그런 연주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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